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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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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3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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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기포의 기획단계인 사발통문에 대한 재검토와 내용, 그리고 고부기포에서 무장을 거쳐 백산에서 혁명군으로 위상을 갖추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발통문에 대한 재검토이다. 그동안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연구에서 많은 부분에서 사발통문을 분석하였다. 이들 대부분의 연구는 기존의 사발통문이었다. 그런데 이 사발통문은 진위논쟁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료가 발견되기 전까지라는 전제 아래 그 내용에서도 많은 논란이 재기되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료가 송재섭의 사발통문이라고 할 수 있다. 송재섭의 사발통문은 기존의 사발통문에서 알려지지 않은 통문을 비롯하여 격문을 수록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사발통문의 한계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사료하고 할 수 있다. 둘째, 사발통문은 단순하고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고부기포를 위한 ‘고도의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송재섭의 사발통문의 통문과 격문은 고부기포의 당위성을 밝히자 곳곳에서 민중들이 모여 호응하였고, 고부기포에 직접 참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통문과 통문의 성격은 반봉건 반외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무장포고문과 백산대회 격문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사발통문의 서명자의 경우 대부분 동학교인이었으며, 생존자는 이후 천도교 고부교구를 설립 하는 등 천도교단과 그 맥을 같이 하였다. 사발통문의 4대 항목은 단순히 고부라는 지역성을 넘어 전국적인 차원에서 준비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학농민혁명 전 과정의 기획성이었음을 보여준다. 셋째, 고부기포의 성격이다. 고부기포는 그동안 동학농민혁명에서 前段階 즉 民亂으로서의 인식이 강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고부기포는 3월 13일 ‘완전 해체’ 또는 “결국 3월 13일에 이르러 두 달 동안 환히 타올랐던 조항의 횃불이 완전히 꺼지고 말았다”라는 확신하였다. 이는 고부기포와 무장기포를 ‘별개의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부기포의 지도부가 여전히 존재하는 가운데 무장에서 다시 기포를 준비하였다. 이는 고부기포의 완전 해체 또는 완전히 꺼진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무장기포는 고부기포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은 고부기포가 그 시발점이었으며, 무장기포를 거쳐 백산대회를 통해 동학농민군은 명실상부한 혁명군으로서의 위상을 갖추었다. 이러한 점에서 고부와 백산은 동학농민혁명의 상징이라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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