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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역사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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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논총 동북아역사논총 제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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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 77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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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최근 중국 고고학계는 석묘(石峁) 유적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그 면적은 400만m2를 넘어 단순히 면적만 비교해 보더라도, 중원(中原)지역의 도사(陶寺)유적, 이리두(二裏頭) 유적보다 크다. 중국학계에서는 이 유적을 용산시대 후기 북방문화권을 대표하는 초대형 중심취락으로 규정하고, 고대 사서에 등장하는 인물과 연결하거나, 중화문명을 구성하는 하나의 구성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석묘 유적이 위치한 섬서성 북부지역은 전통적으로 중원지역과 구별되는 북방지역으로 인식되었고, 고고학적인 양상 또한 눈에 띄게 차이를 보이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필자는 북방지역 용산시대에 나타나는 석성에 주목하였다. 당시 중원지역에서는 토축 담장을 두른 토성이 활발히 건설되었고, 이것은 북방지역에서 석성이 활발히 건설된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이 글에서는 석묘 유적이 발견되는 섬서성 북부와 그 인근 북방지역의 취락 형태, 그리고 중원지역에서 발견되는 취락형태에 대해 기초적인 비교를 통하여 용산시대 북방지역과 중원지역의 문화 차이에 대해 분석하였다. 결론적으로, 두 지역의 고고학적 양상은 두 집단의 성격 차이를 보여준다. 따라서 석묘 유적을 비롯한 북방의 석성 축조집단이 중원문명이 형성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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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Ⅰ. 머리말
  2. Ⅱ. 북방지역의 취락 유적 검토
  3. Ⅲ. 중원지역의 취락 유적 검토
  4. Ⅳ. 북방 석성문화와 주변문화의 관계
  5. Ⅴ. 맺음말
  6. 참고문헌
  7. 국문초록
  8. ABSTRACT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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