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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17∼18세기 경 조선의 문화적 융성과 함께 서화고동(書畵古董)에 대한 관심이 점차 대두되면서 그 대상으로 검(劒)이 주목을 받았고, 그 중 일본도(日本刀)에 대한 기호(嗜好)도 아울러 증가하게 되었다. 조선후기 사인에게 있어서 일본도(日本刀)는 단순히 왜적의 흉악한 무기가 아닌, 전설상의 보검(寶劒)에 버금가는 수준의 명검으로 인식되기도 했고, 고동 수집의 대상인 동시에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애장품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왜적에 대한 적개심을 투영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시대적 경향으로 인해 이명(李溟: 1570∼1648)은 진귀한 일본도 두 자루를 구해서 청나라의 장수와 황제에게 예물로 보내도록 하기도 했고, 박제가는 일본도 두 자루를 구하여 중국 문인인 친구 증욱(曾燠: 1760 ∼1831)과 장문도(張問陶: 1764∼1814)에 대한 선물로 활용하기도 했다.
동계 조귀명(東谿 趙龜命: 1693∼1737)은 남이웅(南以雄: 1575∼1648)이 소장했던 일본도가 그의 손자에게 전래된 내력을 <남중하전(南重河傳)>과 <남씨단검명(南氏短劒銘)>에서 기술하였는데, 그는 이 두 작품을 통해서 일본도가 남씨집안의 무풍(武風)을 상징하는 기물임을 은연 중에 보여주고 있다. 또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은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5∼1682)이 소장했던 일본도에 대해서 <일본도(日本刀)>, <일본도가(日本刀歌)>, <갱차일본도가(更次日本刀歌)> 등을 짓기도 했고,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추야잡감(秋夜雜感)>에서 가을밤의 감회를 노래하면서 소장한 일본도를 숫돌에 갈기도 했으며, 일본의 전반적인 역사와 풍속, 문물을 수록한 「청령국지(蜻蛉國志)」에서 일본도에 대해 정확한 기록을 남겼다. 이외에 김정희(金正喜: 1786∼1856)와 남공철(南公轍: 1760∼1840), 김려(金鑢: 1766∼1822)도 일본도에 대한 시를 통해서 이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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