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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고대학회 선사와 고대 선사와 고대 제33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59 - 82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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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일제강점 이후 가속된 근대 학문으로서의 한국미술사의 성립과 그 패러다임의구축에 미친 일본 제국주의의 영향과 의미를 살펴본 글이다. 메이지(明治) 유신 이래, 일본은서유럽의 제국주의를 본받아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文明指導論’을 내세웠다. 식민 정책중 하나가 文明史의 입장에서 조선의 역사와 미술을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조선 倂呑 이전까지 오늘날 미술로 불리는 것들은 조선에서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範疇化(categorize)되지않았던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의 미술사는 성립과 전개가 일제에 의해 형성된 근대학문이다. 일본 제국의 지식인들은 불교와 불교미술을 중심으로 일본과 조선의 미술사를 구성하려고 했다. 조선 각지의 유물을 조사하여 조선미술사의 기초 자료로 삼았고, 패러다임을 구성했는데 이는 조선미술사의 이론적 토대일 뿐만이 아니라 조선인의 지식 체계, 나아가 자기정체성(identity)을 만들어내고 규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에 의해 ‘발견’된 조선의미술은 그들에 의해 복원․수리되고 朝鮮史, 朝鮮美術史를 통해 再맥락화 된다. 우리나라의미술을 ‘미술’의 이름으로 역사적 체계를 세워 재구성한 것이 조선미술사이다. 이때의 재구성은 전근대까지 이들 문화재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특정한 맥락을 지니고있었던 것을 일제의 구미에 맞게 배치하고 강조했다는 점에서 ‘脫맥락화 - 再맥락화’의 과정을거친 것이다. 미술로의 규정이 탈맥락화라고 한다면 조선미술사로 구성한 것은 재맥락화가된다. 이 때, 재맥락화의 핵심은 ‘古典․古代의 찬양’과 ‘동양 예술의 빠진 부분을 보충’하는것이었다. 關野貞의 朝鮮美術史에는 조선의 미술이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에 걸쳐 발달의 정점에 달했고, 고려에는 쇠퇴의 조짐을 보이다가 조선시대에는 쇠퇴를 거듭했다고 썼다. 삼국및 통일신라의 미술은 마땅히 본받아야 할 ‘古典’이 되었다. 이처럼 고대를 중시하고 고전을만들어내려 했던 것은 서양의 문명사에 비견되는 동양의 문명을 만들어내려 했던 일본의역사 만들기에 의한 것이었다. 세키노가 우리 미술의 흐름을 ‘도입-발전-절정-쇠퇴’라는진화론적 文明史觀으로 파악한 것도 일제강점기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세키노를 비롯한 일본 학자들이 조선 미술을 일본과 중국 사이를 연결해주는 고리로 파악한것은 그들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한 조선미술사의 허구의 가치이다. 이 점은 일본이 일본미술을 세계 미술사 속에서 위치 지우려 했던 것과 명백히 비교가 된다. 일본인들에 의해 성립된 근대적 학문으로서의 조선미술사는 그들이 구축한 패러다임대로 정비되었고, 나름의 논리 체계와 구성 속에서 정교해지고, 공고해졌다. 이는 일본이 조선에 관한 “지식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專有했으며, 자신들의 의도대로 패러다임을 확정했음을 의미한다. 또 일본은 이를 대중 교화, 강연, 교육의 이름으로 공론화하고 대중화했다. 일제강점기에 주입된 조선미술사의 가치관과 역사관은 일본 제국주의가 주체가 되어 원래제작되고, 자리매김되었던 맥락에서 벗어나 탈맥락화, 재맥락화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것이다. 우리 문화유산은 그 자체로서 존재했고, 그 물질적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에대한 인식이 변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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