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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56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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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경기도 안양시에는 고려시대 이래 다수의 사찰이 건립되었고 현존하는 불교문화재의 수도 적지 않다. 그 중 관악산에 인접한 삼성산 망해암에는 높이 약 3.4m의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하반신 일부가 전각의 마룻바닥 아래에 감추어져 있던 이 상의 보개 하단에는 “成化十五年四月日造成”이라는 명문이 있어 조선 성종 10년(1479)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근래 불상의 회칠을 벗겨내는 보존처리작업을 실행한 결과 기존에 알려져 있던 것과 판이한 조성 당시의 상호가 드러났다. 추가적인 조사를 위해 마룻바닥을 탈거한 결과 연화문이 시문된 대좌까지 완전하게 남아 있는 여래입상임을 알게 되었다.
    망해암 석조여래입상의 상호와 착의법, 수인 등은 고려전기의 석불에 보이는 양식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즉 양감있는 상호 표현과 양 어깨에서 외반하는 U자 형태의 대의 주름, 왼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오른손 옷자락을 쥐듯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는 수인은 고려전기에 중점적으로 조성되는 특징이다. 이는 특히 고려전기에 새롭게 보이는 보살입상에서도 간취되는데, 신양식의 고려전기 보살입상이 미륵보살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역으로 망해암 석조여래입상 또한 미륵불로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망해암 보개에 음각된 명문이 가리키는 조선 성종대의 불상과 망해암 상은 양식적으로 매우 이질적이다. 조선전기의 석불입상에 보이는 보개는 그 형태나 착용 방식에 있어 망해암 상과 매우 유사하나, 상호의 표현이나 신체 비례, 수인과 옷주름의 조각 등에 있어서는 단순히 제작기술의 우열을 넘어서는 차이를 보인다. 한편 망해암 상의 양식적 편년에 해당하는 고려전기에는 석불이 보개를 착용할 경우 불정과 맞닿는 보개 하단이 연화문 등으로 장식되었다. 이와 같은 표현은 통일신라대의 석조미술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망해암 석조여래입상은 고려전기에 제작된 후, 1479년에 현재의 보개가 씌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추후 망해암 석조여래입상에 대한 정밀조사가 진행된다면 추가적인 양식 및 편년상의 특징에 더하여 존상과 관련된 내용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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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ECN-0101-2022-910-000143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