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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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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한국사상사학 제27호
발행연도
2006.1
수록면
263 - 286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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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重敎가 華西 李恒老의 心說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조정하여 보충하고자 調補華西先生心說이라는 글을 써서 金平默의 인가를 받고자 한 것이 논쟁의 불씨가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심설논쟁은 스승과 같았던 김평묵과 1886년부터 시작되어 1888년 유중교가 華西先生心說正案을 지어 김평묵에게 稟定하고, 이에 대해 1889년 김평묵이 답신을 하면서 일단락된다. 김평묵 사후에 다시 그의 문인들과 유중교의 문인들을 통해 격렬한 비난의 논쟁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논쟁의 여진도 임종을 맞은 유중교가 제자들에게 正案의 회수를 당부하며 논쟁은 끝이 난다. 유중교의 調補華西先生心說은 華西의 이 神을 理氣之妙合의 중심으로 삼아, 華西가 神을 理에만 배속시켜 말했던 부분을 氣로도 균형있게 배속시켜 偏屬에 따른 오류를 막고자 하였다. 즉 神을 理의 측면에서만 접근할 경우 神明이 理氣之妙合한 物이라는 것을 모르고 仁義와 같은 則과 동일시 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김평묵은 유중교의 논리적 배려에 대해, 그는 華西의 本旨를 그대로 지향해 강화하는 길을 택했다. ‘以理斷心’의 화서 心說을 그대로 유지하였고, 主氣論으로 흐르는 당대의 학문들을 경계하면서 본원적 차원의 가치들을 우선하였다. 만일 유중교의 논리적 전제들을 그대로 인정할 경우 본원적 차원의 가치들을 우선시 하는 논리들이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현상계에서 바라보는 논리적 관계들을 유기적인 관점으로 인정하면서도 형이상의 道를 가치론 차원에서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洪直弼과 李恒老 중에서 華西를 스승으로 택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유중교와 김평묵의 華西心說에 대한 논쟁은 19세기 내부적 혼란과 대외적 열강의 침탈 등을 배경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들의 논쟁은, 비록 세계사적 흐름을 읽어내며 전통 가치관의 변화를 적절히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조선의 전통적 가치관을 통해 시대적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던 노력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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