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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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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한문학회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제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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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60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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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등을 통해 유추해 볼 때 삼국시대인들은 일정하게 공동체의식이 있었다. 그러나 남북국시대 신라인들은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하였다고 하면서도 말갈로 인식하여 공동체의식이 희박하였다. 그러나 남북국시대에 있었던 두 왕조간의 이러한 인식은 서로의 정치적 대결관계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결과로 판단하였다. 양국의 대결적 상황이 고착되면서 신라인들이 고구려를 ‘吾邦’으로 인식하였던 것으로부터 이민족이나 다름없는 ‘靺鞨’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구려 계승을 표방한 고려왕조는 왕조 귀족들의 구성이 金富軾과 같이 신라인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에 대해서는 『三國史記』에서 「高句麗本紀」를 입전할 정도로 동질의식이 강했다. 이후에도 고구려는 왕조적 필요와 명분에 의거해서 고구려사를 더욱 깊이 인식하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지 왕조의 고구려계승을 당연시하였다. 그런데 고구려사의 한국사적 정통성에 대한 인식은 변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사를 재인식하게 되었던 계기는 중국의 ‘統一的 多民族國家’論과 ‘東北工程’으로부터였다. 이 때부터 한국인들은 고구려와 발해의 후손의식을 더욱 강하게 갖게 되었다. 반면에 한국사에 있어서 발해사는 고구려계승국으로 인식하기도 하면서도 이민족과 같은 말갈로도 인식하는 양면적 관계를 갖고 발전하였다. 고려왕조는 발해를 ‘親戚之國’으로 인식하면서도 ‘삼국시대’에 이은 ‘남북국시대’라는 인식으로는 가지 못하였다. 이것은 고려 자신이 고구려를 계승한 왕조로 규정하고 있었기에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로 인정하기 어려웠고, 신라와 발해의 대결적 결과가 공동체적 인식의 관계로 발전하지 못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조선 초기는 華夷史觀에 입각하여 발해를 말갈로 보면서 남북국으로 인식하지 못하였다. 이것이 조선 후기에 있어 국학 중심의 생각이 발전하면서 발해사에 대한 인식이 증대되고 ‘남북국시대’로 인식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남북국시대의 일환으로 인식한 발해사에 대한 부분은 한말과 독립운동기로까지 이어졌다. 물론 이 시기에도 발해사는 말갈사로 인식되었던 교과서 등도 많았다. 특히 독립운동기는 연구미약과 말갈로 보는 滿鮮史觀의 영향아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해방 후 한국사에서의 발해사는 ‘지배층은 고구려유민 피지배층은 말갈’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발해사의 계승관계에 대한 핵심적인 문제는 ‘靺鞨’이었다. 그러나 80년대에 말갈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말갈의 他稱 즉 汎稱說에 입각하여 卑稱說이 힘을 받으며, 말갈이란 결국 고구려변방주민을 멸시적으로 부른 종족명이었다는 데에 이르게 되면서 발해의 고구려계승관계가 더욱 힘을 받게 되었다고 진단하였다. 말갈로 불리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은 대부분 고구려인이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도 초기의 피지배 말갈설은 90년대부터 고구려땅[발해본토]에서 발해가 이어가고 있다는 상식을 바탕으로 다수의 고구려유민설이 정착하게 되었다. 한국사학사에서 발해사를 고구려사로 인식하였는가의 여부가 곧 발해사의 진실을 입증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 각 시대의 고구려・발해사에 대한 인식이 시대적 요구에 응해 생성된 인식의 차원에서 나온 것이었다는 점을 파악하고, 왕조적 입장과 당나라 중심의 기록들을 민주적이고 자주적 입장에서 재인식하는 과정에서 역사의 본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전근대의 역사인식이 곧 역사적 진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고구려는 엄연히 사실에 바탕을 둔 고려와 조선의 선대 왕조였으며 한국고대사의 일부였다. 발해사도 고구려와 다른 말갈의 왕조가 아니라, 지배층이나 피지배층을 막론하고 대부분이 고구려유민의 왕조였다. 현대 한국인들이 고구려와 발해의 후손을 자처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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