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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成正鏞 (日本 京都大學交)
저널정보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백제연구 제38권
발행연도
2003.1
수록면
25 - 56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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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지역에서는 公州 武寧王陵과 原州 法泉里 2號墳에서 중국 자기가 보고된 이래 100餘 개체가 넘는 많은 양의 中國 陶磁가 출토되고 있다. 이는 당시 高句麗나 新羅, 倭 地域의 중국 물품 유입현황과는 큰 차이가 있어, 백제인의 중국 고급문화에 대한 향유욕과 경사도를 잘 엿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중국 도자를 둘러싼 교섭의 성격이나 중앙과 지방과의 관계, 陶磁史的 영향 등을 중심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으나, 추구해야될 과제도 적지 않다. 또 중국도자는 중국 紀年銘墓 출토품과의 交叉 編年을 통해 아직 논란이 많은 三國考古學의 年代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먼저 백제 유적 출토 중국도자를 집성하고, 서울 風納土城과 石村洞, 原州 法泉里, 天安 龍院里와 花城里 등 주요 유적 출토 陶磁에 대한 교차편년을 통해 그 제작연대를 보다 분명히 하였다. 이를 토대로 백제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 자기의 副葬時點과 傳世論 등의 문제를 검토하였다. 백제 지역 출토 중국 도자는 漢城期의 것이 70여개체 이상으로 가장 많고 中央과 地方의 생활유적과 고분에서 같이 출토되는데 비해, 泗 期에는 그 수도 23점 정도로 적고 중앙의 생활유적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어 陶磁에 내재된 성격이 시기별로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그 수가 가장 많은 漢城期의 磁器는 중앙에서는 實用器的 측면이 지방에서는 威勢品的 성격이 보다 강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泗 期로 가면서 高級容器가 金屬器 등으로 대체되고 자기를 모방한 綠釉陶器 등의 생산 실험이 이루어지면서, 귀족층 사이에서 최고급품으로서의 선호도가 줄어드는 대신 좀 더 實用器化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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