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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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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72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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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고구려의 褥薩은 6~7세기의 관명으로 왕도 5부와 諸大城의 장관이었다. 본고에서는 각종 문헌과 묘지에 보이는 욕살의 사례를 검토해 그의 군사적 성격을 확인하고 운용의 방식과 의미를 고찰하였다. 왕도 5부의 욕살은 5부병의 지휘관이었다. 5부병은 상비군으로, 전시의 경우 예비군을 동원해 야전군을 편성하였는데, 5부 욕살은 그 지휘관으로 선임되기도 하였다. 645년 주필산 전투에서 一軍의 장군으로 출전한 고연수 · 고혜진이 그의 한 사례였다. 제대성의 욕살 역시 지방 상비군의 지휘관으로, 전시의 경우 일대 諸城 · 諸部落의 군사권을 부여받았다. 일정 지역의 軍政大權을 관장한 것이다. 욕살은 동시기 신라의 軍主 · 백제의 方領 · 당의 都督 · 돌궐의 샤드 등과 비교된다. 특히 백제의 방령이 주목된다. 고구려의 왕도 5부와 제대성은 백제의 5부 · 5방과 상통하였다. 왕도의 5부병이 공통되었고, 제대성의 욕살과 5방의 방령이 유사하였는데, 욕살과 방령은 모두 최고위 귀족이 임명되었다. 제대성의 욕살과 5방의 방령은 왕도의 5부 장관과 동급으로, 비단 장관만 아니라 무관 · 군사조직이 동일한 체계였다. 군사 운용과 전시에 대비한 평시의 군제였고, 군제에 기초한 지방제도의 운용이었다. 이와 같은 군사체제 · 지방제도 운용의 중심에는 상비군이 있었는데, 상비군은 이를 유지하기 위한 부세제도 · 관료제도를 수반하였다. 중앙집권적 국가체제 정비와 궤를 같이 하였던 것이다. 6~7세기 고구려의 욕살은 중앙집권적 국가체제 정비에 기능하였고, 그와 같은 추이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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