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소속 기관 / 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서울디지털대학교)
저널정보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신학전망 신학전망 제217호
오류 신고하기

피인용 0

검색

    초록·키워드

    본고는 한국 천주교회 설립 초기에 지도자적 역할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순교자와 배교자라는 양면적 평가를 받고 있는 김건순의 삶과 신앙을 고찰하기 위하여 마련되었다. 김건순은 당시 위세를 떨치던 노론 명가의 자제로 김상헌의 봉사손이자 직계 장손이었으며, 후덕한 인품을 지닌 빼어난 문장가였다. 어려서부터 한문 서학서들을 비롯한 다양한 서적들을 섭렵한 그는 주문모 신부를 만나 밤새 이야기를 나눈 끝에 천주교인이 되고자 결심하였다. 그는 곧바로 주위 사람들에게 전교하고 교리를 가르치는 한편,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명도회장이었던 정약종과 함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교리서인 『성교전서』를 편찬하는 막중한 소임을 받았다.
    김건순은 주문모 신부가 의금부에 자수하여 심문을 받는 자리에서 언급하여 체포되었다. 그는 여섯 차례에 걸쳐 심문을 받았다. 1차 추국 때에는 집안의 압력과 가문의 안전을 위하여 주문모 신부를 비롯한 천주학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하였다. 그러나 2차 추국 때부터 주문모 신부를 만난 사실과 천주학 관련 사실을 시인하였으며, 5차 추국과 6차 추국에서는 자신이 천주교인이라고 최후 자복 진술을 하였다. 이에 따라, 안동 김문의 파양 정장과 관찬 사료들에서는 공히 그를 사학죄인이라 판정하였으며, 당시 교회 사료들에서는 그를 순교자로 기록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김건순이 추국 중에 세례 받은 사실을 부인하였다는 이유로 배교자로 평가하여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이는 당대의 교회 사료들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교회 사료 기록자들의 엄정한 태도를 간과한 결과이다. 따라서 추국 과정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그가 천주교인으로서 신앙을 고백하고 치명하였다는 사실을 직시하여 순교자로서의 그의 삶과 신앙을 재평가해야 한다.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UCI(KEPA) : I410-ECN-0101-2022-231-001352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