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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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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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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학교 법학연구소 법학연구 법학연구 제25집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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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본 논문은 고려율령의 혼인무효조문을 당과 송의 비교에서 그 異同點을 찾아보았다. 첫째, 고려의 혼인무효조문은 당송의 것을 받아 정비되었다. 이는 다음의 금지조문에서 확인이 된다. 즉 ① 근친혼, ② 중혼(여성), ③ 조부모와 부모가 감옥에 있을 때 혼인한 경우, ④ 감림관과의 혼인, ⑤ 양천교혼 ⑥ 수절녀의 강제 재혼 ⑦ 창기를 처로 삼는 것 등이다. 물론 이외에 율령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례에서 처벌조항을 볼 수 있는 것은 ⑧ 거짓으로 하는 혼인, ⑨ 부모 상 중의 혼인, ⑩ 중혼(남성) 등이다. 둘째, 이에 대한 형량은 당송과 일치하지 않는다. 다만 율령의 흐름을 보건대 고려후기로 갈수록 당의 질서보다는 송대의 질서가 반영되고 있다. 이는 혼인관념, 금혼범주, 주혼자의 조문 등에서 확인이 된다. 셋째, 처벌 내용이 당 · 송과 상이한 것은 고려관습법의 영향으로 보인다. 고려는 불교 등의 다양한 사상체계로 국가질서를 유지하였으므로 유교적 질서가 정착되지 않은 사회였다. 따라서 유교적 예제에서 중요한 의식의 하나인 혼인관련 의례가 준수되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서류부가혼과 이로 인한 양측적 친족질서, 동기의식 등이 율령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고려후기 성리학이 도입되면서 고려도 송대적 질서를 받아들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율령에 반영하여 정비되었다. 따라서 고려말기에 이르러서야 당송대적 율령을 그대로 모방하는 조문이 완성되어 부계혈통 중심의 가족질서체제가 정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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