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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106호
발행연도
수록면
153 - 201 (49page)
DOI
10.37331/JKAH.2022.6.106.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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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익산 쌍릉은 일제강점기 자료를 정리하고 보고하는 과정에서 대왕릉의 피장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인하여 再조사되었다. 그 결과로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들이 확인되었으며, 궁극적으로 백제 말기 왕릉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본 논고는 고고학 자료를 토대로 쌍릉의 구조와 특징을 검토하여 대왕릉과 소왕릉의 선후관계를 파악하고 그 피장자를 살펴본 글이다.
Ⅱ장에서는 쌍릉의 조사 결과 석실의 정확한 규모는 물론이거니와 1) 능원의 가능성, 2) 판축기법의 응용, 3) 남조척의 사용, 4) 수릉의 가능성 등을 살펴보았다. 더불어 대왕릉에서 발견된 인골의(102개체) 자연과학적 분석 결과 그 주인공은 7세기 전·중반경에 사망한 노년층 남성으로, 평균 이상의 身長을 가진 고칼로리성 음식을 주로 섭취한 사람으로 파악되었다.
Ⅲ장에서는 횡혈식석실과 출토유물 등을 통해 쌍릉의 선후관계를 파악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부여 왕릉원의 석실과의 비교를 통해 쌍릉 역시 부여 왕릉의 구조와 속성을 충실하게 답습하고 규모에 있어서도 뒤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왕릉이 확실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백제 사비시기의 관등제의 실상을 대변하는 銀花冠飾이 출토된 횡혈식석실분의 천장유형으로 볼 때 중하총은 聖王, 동하총은 威德王, 서하총은 惠王, 서상총은 法王의 능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또한 쌍릉은 석실의 구조와 출토유물의 분석을 통해 소왕릉이 대왕릉보다 먼저 축조되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대왕릉에서 출토된 玉 장신구는 중국 隋·唐 황제릉의 출토품 사례로 보아 당시 백제 최고위 계층이 착용한 허리띠 장식으로 확인되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익산 쌍릉 대왕릉의 피장자는 641년에 사망한 백제 제30대 ‘무왕’으로 비정된다.
Ⅳ장에서는 문헌기록상의 무왕의 출계와 무왕의 비에 대한 검토를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무왕은 池龍으로 표현된 비정상 결혼에서 출생한 아들로 추정되며, 무왕의 첫째 왕비(妃)는 미륵사를 창건한 선화공주로 검토되었다.
결국 앞 서 살펴본 고고학 자료를 문헌기록과의 연관성으로 볼 때 쌍릉 피장자는 대왕릉은 ‘武王’, 소왕릉은 ‘善花公主’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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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국문 초록
  2. I. 머리말
  3. II. 쌍릉의 조사 성과
  4. III. 쌍릉의 선후관계
  5. IV. 쌍릉의 피장자 검토
  6. V. 맺음말
  7. 참고문헌
  8. Abstract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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