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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대한지리학회 대한지리학회지 대한지리학회지 제57권 제3호(통권 제2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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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이 논문은 1880년대 조선과 청 사이의 두 차례 감계에서 진행된 수계조사와 양측이 주장한 국경에 대해 분석하고, 이러한 국경주장들을 지도로 표현하고 있다. 1880년대 초 함경도 월경변민들은 「압록강 - 정계비 - 토문강 - 분계강 - 두만강 - 동해」가 조선과 청의 국경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이는 양국의 국경조사로 이어졌다. 을유감계(1885)에서 청측은 「압록강 - 이명수 - 허항령 - 삼급포(삼지연) - 홍단수 - 두만강」을 국경으로 주장하였고, 조선측은 임진년(1712)에 설치된 백두산정계비와 경계표지물들을 근거로 해야 한다고 맞섰다. 정해감계(1887)에서 청측은 「압록강 - 소백수 - 소백수 상류 우측 지류 - 소백산 정상 - 석을수 - 두만강」을 국경으로 주장하였다. 이는 새로운 수계조사 결과 석을수가 두만강 상류 세 물줄기 중에서 가장 긴 물줄기라는 점에 근거하여 입장을 수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수계조사 결과는 오류였다. 또한 청측은 석을수가 소백산 골짜기와 연결된다고 하며 지리적 사실을 왜곡하였는데, 이는 청 왕조의 발상지로서 장백산(백두산)을 배타적으로 점유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조선측 대표 이중하는 임진정계(1712) 경계표지물들의 분포에 대한 자신의 이해에 근거하여 「압록강 - 정계비 - 황화송구자 동남안의 토퇴 종점 - 홍토 산수 발원지(오늘날 모수림하 발원지) - 두만강」을 국경으로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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