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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이 연구는 하곡 정제두(1649~1736)의 예제(禮制) 인식에 나타난 문화다원론적 의의를 밝히는 데 그 주요 목적이 있다. 그 주요 분석대상 자료는 「경의」, 「임술유교」, 그리고 국가 전례 논의에 정제두가 올린 헌의(獻議)들이다.
「경의」는 옛 성현들의 격언 가운데 일상생활의 실천 규범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발췌한 것이다. 그 규범들에는 『소학』의 기본 정신인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경심이 스며들어 있다. 정제두는 『소학』을 중시하는 조선 예교 문화의 토양 위에서 소학에서 익혀야 할 행위 규범들을 보다 간략하게 요약하여 그 실천성을 높였다. 이러한 점은 의례가 형식에 흐르는 것을 경계하고 간이함과 실천을 중시하는 양명학의 특성이 발휘된 것이라고 하겠다.
「임술유교」는 정제두가 34세에 후손들에게 남긴 가르침으로서 상제례와 학술에 대한 그의 인식이 나타나 있다. 상제례에 대한 인식에서 정제두는 『가례』를 중시하는 조선의 예교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가례』에 근본을 두면서도 상제례의 의식 절차를 보다 간략화하여 실천하기 쉽게 만들었다. 이것도 역시 실천을 중시하는 양명학의 정신이 발휘된 것이라고 하겠다.
국가 전례에 대한 이해에서는 ‘단의빈’, ‘경종’, ‘효장세자’의 복제 논의를 다루었다. 정제두는 국가 전례에서 한결같이 계체를 중시하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리고 그 주장이 의거하는 바의 경전도 고례인 『의례』만이 아니라, 『가례』와 『경국대전』 및 『오례의』가 두루 활용된다. 그 가운데서도 정제두는 특히 『오례의』에 많은 권위를 부여한다. 선왕이 제정한 예전에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예송을 방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은 조선왕조가 수립한 시제를 중시한 것이다. 국가 전례에 대한 정제두의 이해에서 양명학적 특성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복제에 관한 논의는 구체적 사안에 어떤 예문을 적용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것으로부터 어떤 학문적 특성이나 학파의 차이를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양명학에서는 일체의 문제를 마음으로 환원하려는 성향으로 인해서 제도로서의 예에 대한 탐구가 부족하다. 그런데 정제두는 양명학자임에도 예에 관한 많은 언급들을 남기고 있다. 이것은 그가 조선의 독특한 문화, 즉 주자학적 예교 문화의 토대 위에서 학문을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예제 인식에 나타난 문화다원론적 의의라고 하겠다.
「경의」는 옛 성현들의 격언 가운데 일상생활의 실천 규범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발췌한 것이다. 그 규범들에는 『소학』의 기본 정신인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경심이 스며들어 있다. 정제두는 『소학』을 중시하는 조선 예교 문화의 토양 위에서 소학에서 익혀야 할 행위 규범들을 보다 간략하게 요약하여 그 실천성을 높였다. 이러한 점은 의례가 형식에 흐르는 것을 경계하고 간이함과 실천을 중시하는 양명학의 특성이 발휘된 것이라고 하겠다.
「임술유교」는 정제두가 34세에 후손들에게 남긴 가르침으로서 상제례와 학술에 대한 그의 인식이 나타나 있다. 상제례에 대한 인식에서 정제두는 『가례』를 중시하는 조선의 예교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가례』에 근본을 두면서도 상제례의 의식 절차를 보다 간략화하여 실천하기 쉽게 만들었다. 이것도 역시 실천을 중시하는 양명학의 정신이 발휘된 것이라고 하겠다.
국가 전례에 대한 이해에서는 ‘단의빈’, ‘경종’, ‘효장세자’의 복제 논의를 다루었다. 정제두는 국가 전례에서 한결같이 계체를 중시하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리고 그 주장이 의거하는 바의 경전도 고례인 『의례』만이 아니라, 『가례』와 『경국대전』 및 『오례의』가 두루 활용된다. 그 가운데서도 정제두는 특히 『오례의』에 많은 권위를 부여한다. 선왕이 제정한 예전에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예송을 방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은 조선왕조가 수립한 시제를 중시한 것이다. 국가 전례에 대한 정제두의 이해에서 양명학적 특성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복제에 관한 논의는 구체적 사안에 어떤 예문을 적용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것으로부터 어떤 학문적 특성이나 학파의 차이를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양명학에서는 일체의 문제를 마음으로 환원하려는 성향으로 인해서 제도로서의 예에 대한 탐구가 부족하다. 그런데 정제두는 양명학자임에도 예에 관한 많은 언급들을 남기고 있다. 이것은 그가 조선의 독특한 문화, 즉 주자학적 예교 문화의 토대 위에서 학문을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예제 인식에 나타난 문화다원론적 의의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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