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덕재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23집
발행연도
2022.8
수록면
33 - 73 (41page)
DOI
10.52271/PKHS.2022.08.123.33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는 『삼국사기』에 전하는 가야 관련 기록을 분석하여 6세기 중반 國史 편찬자, 하대 신라인과 고려 전·중기 고려인의 가야 인식이 어떠하였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6세기 중엽에 국사 편찬자들은 이사금시기에 백제와 마찬가지로 김해에 위치한 狗邪國(후대의 金官國)을 隣國으로서 加耶라고 불렀고, 5세기 후반부터 낙동강 중류지역에서 낙동강을 경계로 接境한 고령의 大加耶를 隣國으로서 새롭게 加耶라고 부르면서 예전의 가야를 金官國(또는 南加耶)이라 불러 구별하였다. 9세기 후반에 신라인들은 신라에 병합되어 각기 金官郡과 大加耶郡으로 편제된 대가야와 금관국만을 가야 국가로 인식하였다. 고려 전기에 함안의 阿尸良國을 阿那加耶라고도 불렀고, 상주시 함창읍에 古寧加耶, 고령군 성산면에 星山伽耶, 경남 고성군 고성읍에 小伽耶가 존재하였다고 인식하였다. 또한 가락국(금관국)과 대가야 및 이들을 합하여 6伽耶라 부르기도 하였다. 고려 후기에 이르러 성산가야는 성주군 성주읍에 위치하였다고 바꾸어 이해하고, 창녕군 창녕읍에 非火伽耶가 존재하였다고 인식하기도 하였다. 고려 전·중기에 6가야가 존재하였다고 인식하면서 가야의 세력 범위도 동쪽은 黃山江(낙동강 하류), 서남쪽은 滄海(남해), 서북쪽은 地理山, 동북쪽은 伽耶山, 남쪽은 나라의 끝을 망라한다고 규정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國史 編纂者의 가야 인식
Ⅲ. 신라 하대와 고려 전·중기의 가야 인식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