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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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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78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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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공민왕대 접경지대 분쟁의 두 축을 구성했던 것은 공민왕과 기씨 세력 및 이와 연계된 접경 고려인 세력이었다. 기철이 요양행성의 고위직을 역임하면서 이들은 여몽 접경지대의 고려인 사회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기씨 세력은 요양과 심양 일대에 주로 분포하던 접경지대 고려인을 통할할 수 있는 위치에 서는 한편으로, 여몽 접경의 쌍성총관부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쌍성의 고려 유망민 일부를 자신들의 수하에 두기도 하였다.
    한편 공민왕은 즉위 이후 국왕권을 확립하려는 과정에서, 비대해진 권력을 가진 기씨 세력과 긴장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이에 공민왕은 정변을 통해 이들을 제거하는 한편으로 그 주변 세력도 근절하려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기씨와 연결된 접경지대 고려인 세력들과 무력충돌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발생했던 접경에서의 여몽 간 군사행동은 크게 3회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 번째의 분쟁은 쌍성총관부 공격이었다(1356). 이는 쌍성총관부에 부식된 기씨 세력을 근절하기 위한 고려의 선공이었다. 두 번째의 분쟁은 덕흥군 옹립 세력의 침입이었다(1364). 이는 기황후의 후원을 통해 요동의 고려인 세력을 동원해 공민왕을 제거하고자 했던 원 제국 측의 반격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의 분쟁은 동녕부 원정이다(1370). 몽골 세력이 막북으로 축출되어 요동 지역이 군웅할거 상태에 있었을 때, 기철의 아들 기사인테무르는 동녕부라는 할거세력을 통해 고려와 적대하였다. 이는 이전의 덕흥군 사건 때와 유사한 정치적 구도를 성립시킬 위험이 있었기에, 공민왕은 원정군을 보내 동녕부를 공격하여 해체시켰다. 이는 기씨 세력의 영향력 또한 고려 주변에서 소멸되었음을 뜻한다.
    공민왕대 발생하였던 고려 본국과 접경지역 고려인 세력 간의 주요 분쟁 다수는 결국 공민왕과 기씨 세력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분쟁과 밀접하게 연동되는 것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쟁에서 고려가 최종적인 승리를 거둔 결과 공민왕은 원 제국이 아니라 그 자신의 권위에 근거한 국왕권을 재정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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