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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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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동아문화 東亞文化 第59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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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1637년 초에 벌어졌던 병자호란 기간에 청 태종 홍타이지와 조선의 인조는 열 통이 넘는 국서를 주고받았다. 그 가운데 숭덕 2년 정월 28일에 홍타이지가 보낸 국서는 실물 문서가 현재까지 남아 있다. 이 글에서는 애초에 한문으로 작성되었던 국서의 원본 텍스트와 청조의 만문·한문 기록물들—내국사원만문당안, 『청태종실록』의 순치 초찬본, 강희 중수본, 건륭 삼수본—에 수록된 텍스트를 비교·분석하여 원본 텍스트가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 추적하였다.
    내국사원만문당안에 수록된 국서의 만문 텍스트는 원본의 한문 텍스트를 만주어로 번역하는 동시에 일부 내용에 편집을 가한 결과물이었다. 『청태종실록』의 순치 초찬본은 만문 텍스트를 다시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청태종실록』의 국서 텍스트는 중역(重譯) 및 편집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청태종실록』 강희 중수본과 건륭 삼수본의 국서 텍스트는 기본적으로 순치 초찬본 편찬 시에 이루어진 만-한 번역의 품질을 제고하기 위한 수정 작업 및 윤문의 결과였다. 따라서 적어도 원본이 한문으로 작성되었던 조선과 청 간의 외교문서에 관한 한 『청태종실록』은 물론이거니와 청조의 만문 기록물 또한 일차 사료로 간주해서는 곤란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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