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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한성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1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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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가야를 복속한 신라는 백제와 새로운 경계가 형성되었고 양국의 역관계에 따라 경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본고에서는 사료에 대한 재검토와 고고학 자료를 분석하여 양국의 경계 변화를 재검토하였다.
    6세기 후반까지 간헐적인 백제의 공세를 경험한 신라는 아막성 서쪽의 방어시설을 보강하자 두 차례 백제의 공격을 받았다. 결국 624년 신라는 백제에게 속함성 등 6성을 빼앗기면서 경계에 변화가 발생하였다. 이어서 642년에 신라는 하주의 치소인 대야성까지 상실하면서 백제에게 가야고지를 잠식당한다. 그러나 김유신이 주축이되어 644~648년경에 신라는 대야성을 비롯한 합천 지역을 탈환하였다. 신라가 대야성을 상실하기 이전에 미후성 등의 40여 성을 상실한 사건은 대야성 전투의 전초전으로 이해되었다. 이를 근거로 신라가 가야고지의 많은 부분을 상실한 것으로 파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관련 기사를 재검토해 보면 청병을 위한 신라의 대당 외교 과정에서 일정한 과장이 있었고, 고고자료를 통해서도 백제에게 빼앗긴 가야고지의 범위는 넓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즉, 신라는 7세기 전반에 일시적으로 백제에게 가야고지를 상실하였으나 곧 탈환하였고, 거창 가조천에서 부근에 형성된 경계는 백제의 부흥운동이 진압되는 663년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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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ECN-0101-2023-911-000131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