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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교육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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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군사 군사 제1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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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홍경래란은 1811년 12월 18일에 시작하여 1812년 4월 19일에 종식되었다. 정주성 전투는 1811년 12월 29일부터 1812년 4월 19일까지 전개되었으며, 홍경래란 전 시기의 대부분은 정주성 전투의 기간이었다. 본 연구에서는 정주성 전투의 전 과정을 시기별로 구분하여 살펴보았고, 이를 통해 드러난 관군과 반군의 역량을 비교하여 제시하였다.
    총공격을 펼친 관군은 신무기 윤차를 이용하여 성을 공격하였으나, 반군 역시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여 윤차를 파괴하였다. 오랜 포위 때문에 식량과 무기가 부족해진 반군은 과감한 출성 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반군이 항복하지 않고 오래 버티자 관군은 성벽을 폭파한 후 진입하여 생존한 인원들을 모두 생포하였으며, 이들 중 여성과 어린이를 제외한 모든 성인 남성 1,917명을 전부 처형하였다.
    관군의 지휘부는 몇몇 예외는 있으나 전반적으로 전투 지휘나 군사 역량 발휘에 무능하였고, 병사들의 전투력 역시 매우 부족한 형편이었다. 관군은 야간에 전투를 시작하면서 공격 기도를 감추지 못하였고 공성도구는 정교함이나 견고성이 떨어져 쓸모가 없었으며, 한양의 훈련도감에 보관된 홍이포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이에 비해 반군은 식량과 무기 부족으로 결국 실패가 예정된 싸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효율적인 방어 도구를 개발하여 이용하면서 최후까지 최선을 다해 성을 지켜내었다. 관군이 결국 성을 점령하였으나 관군의 승리라기보다는 이미 자멸한 반군의 마지막 숨을 끊은 것이었다.
    본 연구는 홍경래란이나 정주성 전투에 관해 기존 연구에서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군사적 관점에 입각한 접근과 분석을 시도한 것이다. 본 연구는 홍경래란의 종합적 이해를 위한 실증 작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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