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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원대학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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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군사 군사 제1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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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마로산성은 백제시대 석축산성으로 지금까지 총 다섯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산성의 전모가 밝혀졌다. 발굴조사 결과 9세기대 유구와 유물이 집중 확인되었는데, 특히 광양의 백제때 지명인 ‘마로(馬老)’가 시문된 ‘마로관(馬老官)’ 기와가 출토되어 주목되었다. 그 이유는 ‘마로관’명 기와의 제작 시기가 9세기대로 판별되어 지명의 사용 시기와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9세기대 건물지, 집수(集水)시설 등에서 독특한 문양의 막새기와, 중국제 동경•자기류, 청동장식구, ‘왕가조경(王家造鏡)’명 동경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러한 유물의 조합은 지금까지 출토 사례가 거의 없는 것으로 당시 마로산성 운영세력의 독자성이 잘 드러난다.
    9세기대는 중앙귀족의 권력투쟁으로 인해 약화된 지방지배를 틈타 지방 호족세력이 영역을 확장해 나가던 시기였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마로관’명 기와와 같은 ‘古지명’이 시문된 명문기와들이 고구려•백제 고토의 거점성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는 점은 그 제작 주체가 지방호족세력일 가능성을 높여준다.
    결론적으로 9세기대 마로산성을 점유한 세력은 독자적인 지방호족세력이었다. ‘마로관’명 기와는 이들이 거점성을 운영하는 전략적 측면에서 명분 확보와 영역지배를 확고히 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서 그들의 국계의식(國系意識)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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