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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성준선 (대구가톨릭대학교 사학과)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47권
발행연도
2022.5
수록면
135 - 171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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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6세기 新羅 眞智王의 즉위와 폐위를 주제로 삼았다. 진지왕이 조카이자 태자의 아들인 白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眞興王의 뒤를 이어 즉위하게 된 배경으로, 진흥왕이 적극 활용한 轉輪聖王이라는 불교적 신성관념으로 등장한 ‘聖骨’을 주목하였다. 진흥왕은 안정적인 왕위 계승과 6세기 후반 달라진 삼국 간의 정세 속에 자신의 유고를 대비하여 백정보다 연장자인 진지왕을 金輪으로 명명하여 정치일선에 등장시켰다. 짧은 재위로 『三國遺事』와 『三國史記』 모두 관련 기록이 소략할뿐더러 서로 다른 실상을 보여주고 있으나, 진지왕이 폐위되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자 한다. 그 배경으로 전자에는 진지왕 개인의 부도덕함과 자질 문제, 후자에는 신라가 처한 대외적 상황의 어려움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두 가지 문제가 혼재되자 신라 지배계층에서 혼란과 위기감, 불만 등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진지왕의 리더십에 큰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폐위의 가장 큰 명분으로는 정법을 수호하고 엄격한 자기관리와 도덕성이 요구되는 전륜성왕으로서 그 자격이 문제가 된 것 같다. 이에 국인들이 폐위를 요구하자 진지왕이 이를 수용하였고,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그 뒤를 銅輪의 아들 백정이 眞平王으로 즉위하였다. 진평왕은 전륜성왕 신성관념이 더는 효용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이보다 한층 더 강화된 신성관념으로 ‘석가족’을 내세웠고, 그 범위를 동륜계로 한정하면서 중고기 성골은 한차례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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