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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정란 (숭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하이데거학회 현대유럽철학연구 현대유럽철학연구 제66호
발행연도
2022.7
수록면
129 - 169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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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일제의 ‘대평양’ 건설이라는 목표로 두고 추진하던 평양의 도시화 과정에 대해 고찰하고, 이어 평양 조선인들의 도시개발운동, 그리고 평양 조선인들의 단합과 정보 교환을 위해 발간한 월간지 대평양 의 ‘대평양’ 건설과 관련된 내용들을 분석함으로써 일제 강점기 평양의 도시화 과정에 대해 총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아울러 평양의 조선인들 중 도시개발운동의 주도세력은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고찰하였다. 1910년 이후 평양의 지역개발이 본격화하기 시작하였다. 도시 개발은 주로 일본인 거주지역인 신시가지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조선인 거주지역을 구시가지, 일본인 거주지역을 신시가지로 불렀다. 1917년 이후 평양 부윤 혼다는 평양을 대공업 도시로 전환하자고 외치면서 ‘대평양’ 건설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평양의 조선인들은 ‘대평양’ 건설에 대해 적극적으로 호응하였다. 그들은 이를 고대 평양의 부활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대평양 건설을 주장한 이후에도 일본인 거주 지역 중심으로 도시개발이 이루어지자 평양의 조선인들은 이를 민족적인 차별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평양의 조선인들은 직접 구시가 개발운동에 나섰다. 이를 주도한 세력은 구한말부터 평양의 정치사회운동, 경제단체활동, 정치활동 등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들이었고, 이들 중 일부는 1920년대 부협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구시가 개발운동에 매진하였다. 1934년 평양의 조선인들은 조선인 거주지역과 인접지역인 서평양을 발전시키기 위해 언론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34년 대평양 을 발간하였다. 주도세력은 평양의 기독교 민족주의자인 안창호와 조만식과 관련되어 있는 인물들로서 미국 유학시절에는 흥사단, 귀국 후에는 수양동우회에서 활동했었다. 일제 당국의 검열로 1937년 3월호가 출간하지 못하면서 더 이상 발간되지 못하였다. 이 시기에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관련 인물들이 체포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더 이상 평양 조선인들의 대평양 건설 논의는 진행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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