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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연구소)
저널정보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74호
발행연도
수록면
33 - 66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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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 정온(桐溪 鄭蘊, 1569~1641)은 왜란과 호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겪었고, 서로 상반된 정권인 광해군과 인조 집권기에 관료로 활동한 유학자다. 그리고 서로간의 갈등이 있었던 남명학파와 퇴계학파를 출입한 문인이기도 했다. 이 논문은 이런 격변기를 살아온 정온의 일관된 정치사상의 핵심을 ‘義’라고 판단하고 그 정치사상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동계의 정치활동과 척화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으나 그의 의리론이 가진 정치사상적 의미에 대해서 조명하는 노력을 부족했다. 이 글은 그가 節義나 義理로 알려진 만큼 그의 사상에 대한 검토를 시도한 것이다. 정온은 국가절명의 순간까지 척화를 주장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서로 상반된 광해군 정권과 인조 정권에 걸쳐 관직생활을 했지만 그는 왕실의 혈육간의 관계를 중요시 하는 전은론과 국가위기 상황에서 척화를 주장하는 것은 일관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점은 광해군의 폐모살제를 비판하고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강조했던 서인들이 정권을 잡자 역모로 왕의 형제를 죽이고 호란을 맞아 명과의 관계를 저버린 것과는 달랐다. 정온은 효를 중심으로 한 인륜이 국가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파악했으며, 이것이 국가정책의 가장 중요한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점은 군주의 권력을 중심으한 자의적 정치의 요소를 배격하려 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정온은 현실 정치적 맥락의 의리보다는 三剛과 같은 인륜을 근거로 한 의리를 실현하는 것이 국가의 장기적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점이 전은론과 척화론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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