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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김장생(金長生)의 『근사록(近思錄)』 주석서 편찬과정과 사상사적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근사록』은 주희(朱熹)와 여조겸(呂祖謙)의 저술로 초학자들의 학습을 돕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고 주희가 직접 밝힌 책이다. 따라서 실천적 내용을 주로 수록한 『소학(小學)』과 함께 초학자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조선에서 『근사록』은 중요한 책으로 여겨지기는 하였으나 조선 전기 김종직(金宗直) 이래로 강조된 『소학』과 달리 특별히 주목받지는 못하였다. 이것은 김종직 이래로 유학자들에게 실천을 강조하는 흐름이 강하였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근사록』이 자주 언급되었던 것은 16세기 이황(李滉)에 의해서였다. 이황은 사서삼경 연구를 심화하여 경전 번역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말년에는 『근사록』을 주로 보았지만 체계적인 저술을 하지는 못하였다. 주자학을 기반으로 한 초학자 교육의 주석서는 주로 서인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김장생(金長生)은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를 저술하여 최초로 『근사록』 주석서를 편찬하였다. 『근사록석의』는 앞선 주석서들과 달리 조선 학자들의 설을 대거 수록하였다. 자신이 『근사록』을 해석한 내용과 인용한 조선 학자들의 설을 합하면 그 비중이 주희를 포함한 중국의 설보다 크다. 이는 그간 진행되어온 경전 연구에 힘입은 것이었다. 조선의 사서삼경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주자학을 자체적으로 이해하는 관점이 생겼고, 김장생은 이를 집대성하고 분석하여 『근사록』 연구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김장생은 이황부터 이어진 성리논쟁에서 이이(李珥)의 입장을 보완했고 학파를 유지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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