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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
저널정보
중앙문화재연구원 중앙고고연구 중앙고고연구 제38호
발행연도
수록면
63 - 98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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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전북지역에 분포한 250여개소의 제철유적 중 조선시대의 것은 9개소이다. 이 시기의 제철유적에서는 발굴조사를 통해 제련로·단야로·폐기장 등 다양한 유구가 조사되었다. 그 중 제련로는 고고학 자료와 문헌기록을 모두 참고할 때, 1. 평면형태가 말각장방형에 가깝고, 2. 지형이 낮은 한쪽 장벽(前장벽)에 1개의 배재구가 존재하며, 3. 그 반대편 장벽(後장벽)에 19개 내외의 소구경 송풍구가 뚫린 구조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제련로는 소위 상형로의 일종으로, 일본의 것과 평면형태 및 소구경 송풍구의 존재 등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으나, 세부구조에서 차이를 보인다. 충주·아산을 포함하여 한반도 남부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데, 전북지역의 경우 조선시대 제련로가 모두 상형로에 해당하여 지역성을 띤다. 생산된 철은 괴련철이며, 원료로는 사철뿐만 아니라 철광석(철티탄 철광석)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단야로는 완제품을 생산하는 성형보다 철소재의 품위를 높이고 조직을 단련시키는 정련·단련단야의 공정을 담당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남원 옥계동 단야로는 내부에 다수의 철재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정련단야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북지역에서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250여개소의 제철유적 중 일부는 철물수취체제 및 사회적 변화에 따라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 전기에는 철소 및 철장의 운영과 관련이 깊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철장의 경우 태종 7년(1407년)부터 시행된 철장도회제(鐵場都會制)와 관련이 있다. 성종 18년(1487년) 무렵에는 철장도회제가 폐지되고 각읍체납제(各邑採納制)가 시행됨에 따라 전북지역 내 철광석 매장지를 중심으로 생산이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에는 광산 개발과 장시가 활성화됨에 따라 사적(私的) 생산이 증대되었으며, 이를 통제하기 위해 조정에서 높은 세금을 부과하자 잠채(潛採)가 성행하였다.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조선시대 제철유적은 운영시기가 후기에 집중되어 있어 사적 생산과 관련이 깊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특히, 대체로 깊은 계곡 내에 입지하고 있어 잠채와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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