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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세제사를 연구하는 것이 한갓 골동품적인 취향이 되어서는 안된다. 세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예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과거세제의 조명 아래에서 비로소 현재세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생생하게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세제의 조명을 통하여 과거세제의 깊이와 폭을 이해할 수 있다.
조선왕조 건국초기의 군역은 사회적인 신분의 귀천없이 고급관료의 자제를 비롯하여 일반양민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면역사유가 없는 한 16세 이상 60세까지 모든 징집연령에 달한 장정은 지방과 각 진에 분거하여 국방에 힘쓰도록 규정된 국민 개병제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국민개병제는 사실상 폐기된 바와 다름없었으며, 군역은 지배층을 제외한 일반 평민의 양역으로만 충당하게 되었다.
당시 군포는 장정 1인에 대하여 1년에 포 2필을 징수하였고 이것은 당시 평균시가로 쌀 12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정 1인당 1년에 포 2필이라는 것은 생산성에 기반을 두지 않고, 아무런 생산의 매개없이 오직 장정 숫자에 따라 누증하여 부과되는 것이었으므로 일종의 인두세(人頭稅)와 다름없는 불합리성이 내포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당시에도 조세부담은 지주층은 적게 부담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농민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조세를 부담하는 조세부담의 불균형이 발생하였다. 그리하여 조선 왕조 후기의 세제 및 세정은 이러한 구조위에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본 연구는 조선후기 균역법의 도입배경과 양역의 폐단을 역사적 문헌과 선행연구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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