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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상철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서양사학회 서양사론 서양사론 제137호
발행연도
2018.6
수록면
38 - 71 (17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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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11월 1일에 밀류코프는 “우매함인가, 아니면 반역인가”라는 후렴구로 유명한 국가두마 연설에서 시튜르메르 정부를 ‘반역’ 혐의로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의 연설은 황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를 직접 거론했다는 점에서, 당시 정부수반인 시튜르메르의 의도적인 ‘반역’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밀류코프는 전제정 정부의 비타협적인 태도와 고양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정치적 난관에 직면해 있었다. 우선 밀류코프는 입헌민주당 내에서 자신의 정치적 노선이 도전받고 있다고, 그리고 잘못하면 입헌민주당이 깨질 수도 있다고 느꼈다. 또한 그는 ‘정부와의 의회주의적 투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1916년 10월에 다시 흔들리던 진보블록의 단합을 유지해야 하였다. 마지막으로 1916년 10월 여러 사회단체들이 다시 정치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면서 국가두마가 반정부 진영에서 차지하는 지도적 위상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밀류코프는 자신과 입헌민주당, 진보블록, 국가두마 등의 지도적 위상과 평판을 지키거나 강화하기 위해 시튜르메르 정부의 ‘반역’ 및 황후의 연루 가능성을 거론했던 것이다. 밀류코프의 이런 주장은 나중에 근거가 부족했음이 드러났지만 완전히 정치적 고려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 러시아 정부가 독일과 단독강화를 맺으려 한다는 우려와, 정부 고위층과 궁정 내에 중요한 정보를 독일 측에 넘겨주는 세력이 있다는 소문은 러시아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다.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우려와 의심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또한 밀류코프는 진보블록에 대한 연합국들의 지지 여론을 러시아 정부에 대한 새로운 압력 수단으로 이용하기를 원하였고, 외국 여행에서의 개인적 경험과 자료들은 그런 의심과 우려를 거의 확실한 사실로 믿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밀류코프의 연설이 대중들에게 미친 영향은 당대인들과 역사가들의 평가만큼 크지 않았다. 밀류코프는 결코 대중혁명을 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중혁명이 그렇게 가깝게 다가와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도 못하였다. 사실 밀류코프는 전쟁이 끝난 후에 대중혁명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을 뿐만 아니라, 그때에도 대중혁명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혁명의 위협 아래 전제정 정부의 정치적 양보를 얻어 입헌주의 체제를 확립하려 하였다. 그리고 당시 파업운동의 확산을 정부 당국이 조장하고 있다는 밀류코프의 생각은 전쟁에 지친 노동자 대중들의 실제 분위기와 상당히 동떨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승리할 때까지 전쟁을 계속하자”는 밀류코프의 연설은 대중들의 분위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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