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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새미오 (제주대학교)
저널정보
동방한문학회 동방한문학 동방한문학 제89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347 - 380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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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부해 안병택을 중심으로 제주 노사학파의 형성과 그 성격을 고찰하였다. 조선말기에서 일제강점기의 기간 동안, 제주도에는 노사학파?화서학파?간재학파의 인물과 문집이 확인된다. 그 흔적은 신촌에 있는 매계 이한우 유허비에서부터 시작된다. 매계의 문하에는 노사학파를 배웠던 소백 안달삼ㆍ이락당 이계징, 화서학파를 배웠던 해은 김희정이 보인다. 김희정은 제주유배를 왔던 최익현을 통해 화서학파와 연결되었다. 안달삼과 이계징은 본토에 있던 노사 기정진을 찾아가 배움을 청하였다. 노사학파와 화서학파의 교유가 제주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는 조선후기 학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면 중 하나이다. 안달삼과 이계징에서 시작된 노사학파는 부해 안병택에 이르러 크게 확대되었다. 부해 안병택은 제주에서 본토로 이주하였고, 전라도 지역에서 활발한 교학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부해의 제자는 크게 본토의 제자와 제주도의 제자로 나눌 수 있다. 부해의 제자가 많았다고 하지만 『노사연원록』에는 40여 명밖에 확인할 수 없었다. 제주도 인물은 아무도 없다. 이에 본고에서는 『부해문집』을 통해 부해의 본토 제자와 제주 제자를 다시 정리하였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노사 기정진-송사 기우만-부해 안병택’을 계승한 인물이었다. 부해의 제주 제자들은 대부분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이들 그룹에서 가장 먼저 확인되는 것은 항일의지였다. 처음에는 무력투쟁을 벌였지만,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이후 일제의 억압으로 文鬪로 전환하게 된다. 이들은 역사서 등의 책을 저술하면서 훌륭했던 문화를 후배에 전달하고자 하였다. 조천만세운동은 제주 노사학파와 화서학파의 연장선에서 해석할 수 있었다. 제주 항일운동의 과정에서 제주유림들의 역할을 확인한 점도 의미가 있었다. 본토에서는 간재학파와의 사상적 갈등이 있었지만, 제주도에서는 이런 모습은 없다. 오히려 서로 가까이 지냈다. 이들은 제주사회의 리더로서 사회에 대해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4.3사건에 대한 이들의 시각은 지금도 주목된다. 이렇게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중심에 부해 안병택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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