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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양양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68호
발행연도
2017.11
수록면
225 - 256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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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漢代 堯後火德說이 성립되었던 과정을 통해 고대 중국의 정치적 정당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주나라로부터 天命을 받아 天下를 다스리는 것은 중원왕조가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五德終始說과 天人感應說은 先秦시기에 이르기까지 천명이라는 정신적 개념으로 가시화되었다. 한대에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순환이론은 『易經』 팔괘와 결합하였으며, 상대적으로 복잡한 이론인 오덕상생을 탄생케 하였다. 이 오덕상생의 이론으로 한나라의 요후화덕설이 나타난 것이다. 요후화덕설은 전한이 쇠퇴해질 무렵인 전한 중?후기에 탄생하였다. 이 설이 나온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논쟁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황실을 공고히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된다. 요후화덕설은 주로 2단계로 발전해왔다. 하나는 漢爲火德說을 확립한 것이고, 또 하나는 劉漢世系를 채운 것이었다. 한위화덕설은 주로 劉向?劉歆 父子에 의해 완성되었다. 유향?유흠 부자는 역경을 바탕으로 이어져 왔던 五德相勝說을 五德相生說로 바꾸었다. 오덕상생설은 木德 伏羲가 土德 黃帝를 대신하여 오덕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여기서 유향?유흠 부자가 역경을 입론근거로 삼은 이유는 역경에는 오덕상생을 지지할 수 있는 논거가 있었고, 또한 역경자체가 유가와 도가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경전이기 때문이었다. 유가와 도가집단은 전한시기 경쟁관계에 있던 지식단체였다. 전한 시기에는 양자 중 어느 하나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때에 黃老學派의 견해가 담긴 수덕이론과 유가계열에서 주장한 토덕이론은 모두 반대를 받았다. 유향?유흠 부자가 다른 百家之言을 따르지 않고 단지 역경으로 이론근거를 삼은 이유는 유가와 도가 집단에게 모두 인정을 받고자 했기 때문이다. 유향?유흠 부자가 한위화덕설을 확립한 이후에는 전한 학계에서 한위화덕설을 모두 인정하였고, 高祖와 武帝가 조령한 정책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한 한위화덕설은 또한 한고조가 진나라를 전복한 폭력방식을 오덕상생으로 다시 해설한 것이다. 유향?유흠 부자는 以母傳子의 방식으로 고조에게 龍子의 신분이라는 명분으로 한황실에게 천하를 다스린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유흠은 閏位水德으로 진나라가 2세만에 망하게 되었던 명운을 설명하였다. 이를 통하여 한초 이래 남아 있던 정당성과 관련한 두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유향?유흠 부자의 한위화덕설은 한황실과 요임금 간에 혈연관계의 여부에 대해 논정하지 않았고 德運의 측면에서 양자의 상속관계를 강조한 것이었다. 兩漢 사이에 일부의 참위학자는 한위요후설을 同德?同運의 토대에서 확대하고 左傳을 이론적 근거로 여러 讖言?符命을 보조로 두어 독립적인 학설을 형성하였다. 그리하여 유한세계가 요임금과 연결되었으며, 한황실은 명문의 후손이 되었다. 이로써 光武帝 劉秀는 자신의 정당성을 세워서 한나라를 부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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