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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동윤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고대학 동아시아고대학 제64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301 - 33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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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중고기에는 불교 공인 이후 왕실 주도의 사찰 건립이 진행되었다. 초기 건립 사찰의 위치는 대부분 칠처가람지였던 장소였는데, 이는 토착 신앙적 요소가 강했던 聖所였다. 또한 제방림으로써 기능하는 범람원에 주로 위치하여 건물이 들어서기 힘든 곳이었다. 그럼에도 기존 토착 신앙의 장소를 허물고 늪을 정비하여 불교 사찰이 들어선 이유가 있었다. 사찰의 입지를 경주 분지 지역과 전체적으로 비교해 보았을 때, 외부로부터 왕경으로 진입하는 입구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시장의 개설과 더불어 교통로의 확대에 따른 인구 왕래의 거점이 필요했고, 그 역할을 불교 사찰이 했을 가능성이다. 교통로의 거점 지역은 왕경의 경계점이자 방어점이 되어야 할 필요성이 분명하게 요구되었을 것이다. 이 시기의 교통로 신설과 정비, 제방 축조 등의 사업은 본래 존재하고 있던 읍락과 소국의 모호한 경계선을 확정하는 기능을 하였다. 따라서 경계라는 장소가 가지는 특성에 주목해 본다면, 사찰이라는 건물은 그 자체가 왕경 방어에 유의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중고기를 거친 중대 초에 건립된 성전사원이나 능묘사원들의 입지 역시 교통로와 밀접한 연관이 있고, 이는 사찰이 유사시에 군사 주둔지나 정보 교환 장소의 역할을 했다고 이해된다. 한편 사찰에서 활동한 승려가 환속하여 군인으로서 전쟁을 치른 사례가 보인다. 이와 반대로 군인으로 활동한 인물이 승려가 되는 예도 있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당시 대외팽창을 도모한 신라 국가의 사정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게다가 군대 사열 사례가 보이는데, 그 장소가 대부분 월성의 서쪽 지역인 점과 중고기 초기에 건립된 사찰이 그와 비슷하게 서쪽에 자리한 점 역시 방어적 측면을 드러내는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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