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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저널정보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동양고전연구 제85호
발행연도
수록면
189 - 221 (33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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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본 연구는 19세기에 고창 흥덕에 세거한 담양국씨가의 가계와 고문서 중에서 소송문서를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흥덕 담양국씨가는 18세기 말에 흥덕현으로 입향하여 19세기 말에는 석호로 이거하여 세거하였다. 현존하는 고문서는 199점인데, 대부분 19세기에 생산되었으며 소지류가 68건으로 가장 많다. 이 문서들에서 그들이 흥덕현의 이방, 행수군관, 하리 등의 향리직을 수행했으며, 한편으로 석호의 선려각주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적 소송문서는 사적 소송문서는 주제별로 산송, 재산 상속 분쟁, 채전, 세금 납부에 관한 것으로 나뉜다. 산송에서는 여느 양반가처럼 조상의 분묘를 적극적으로 수호하려는 가부장제의 모습을 보이지만, 재산 상속 분쟁에서는 사위가 처가의 가계와 재산을 상속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채전에는 담양국씨가의 재산과 인근 고을까지 이르는 활동을 확인할 수 있으며, 세금납부에서는 중인층인 그들도 양인처럼 환곡과 군역 등의 세금을 부담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공적 소송문서는 마을 민원, 이방과 수교 수행, 선려각 관련 소송으로 구분된다. 마을 민원의 장두였다는 점에서 그들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이방으로서 신입 수령을 신연하거나 행수군관 또는 수교를 맡아 관련 일을 수행할 때에 그 과정에서 일이 소요된 공적 경비를 자신이 부담한 사실도 확인된다. 선려각 소송에는 지역 선려각주인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고 또 흥덕현에서는 선려각주인이 수세감관을 겸한 것도 확인된다. 경제적 이익이 크다 보니 담양국씨가는 흥덕뿐 아니라 전주, 서울의 유력자들의 이권 침탈에 맞서 싸워야 했으며, 더구나 19세기 말 명례궁의 도려각이 설치되면서 이에 대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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