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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선영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영남학 제79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263 - 293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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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李滉(1501~1570)이 ‘청음석’이라 명명한 장소와 그곳에서의 활동 양상을 고찰한 것이다. 청음석은 李?(1469~1517)가 노닐며 시를 남긴 도계의 반석인데, 이황이 차운 시를 남긴 이후로 현재까지도 유의미한 장소로 기능한다. 이황은 ‘숙부 이우’와 ‘시인 이우’에 대한 공감의 정서로써 청음석을 아꼈다. 이후로 청음석에서는 다음과 같은 활동이 이루어졌다. 첫째는 遊賞과 詩會 활동이다. 그 결과 향촌 사림들이 ‘시를 읊조리며 노니는 장소’ 경험이 공유되는 현장이 되었다. 둘째는 청음석 수계를 조직하여 결속력을 꾀하는 활동이다. 선대의 고사를 재현하고, 자취를 계승해 나가는 전통은 영남지역 사림들이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셋째는 추숭 공간의 건립 활동이다. 청음석은 문중의 家物로 인식되면서, 도학의 연원이 되는 중요한 위상을 점하였다. 후손들은 청음석 언덕에 ‘도계정사’를 세우고 ‘청음헌’ 편액을 걸어 이우와 이황을 함께 기렸다. 이에 다음과 같은 의미가 도출되었다. 먼저, 문학 활동의 순기능을 살필 수 있다는 점이다. 이우와 이황, 후대 제현들의 문학 활동이 없었다면 청음석은 자연 대상물에 불과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장소가 의미화되는 과정이 확인된다는 점이다. 이는 영남 유림들이 정신적 가치를 계승해 나가는 단서가 될 수 있겠다. 나아가 청량산이나 도산서당이 사적 공간에서 공적 영역으로 의미화된 것처럼 청음석도 공적 영역으로 확장되었다는 데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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