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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영식 (총신대학교)
저널정보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ACTS신학연구소 ACTS 신학저널 ACTS 신학저널 제50권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312 - 351 (40page)
DOI
10.19114/atj.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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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호남지역 방문이 이어졌고, 1895년 9월남장로교 연례회의에서 유진 벨(Eugene Bell) 선교사가 전남선교 개척 담당자로 선정되었다. 이후로 이 지역에 대한 그의 활동이 꾸준하고 열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히 1896년에 있었던 유진 벨 선교사와 그 동역자들의 광주 및 나주 방문전도는 “이 도시[광주]의 모든 역사 가운데 가장위대한 사건”이었다. 이때의 방문을 통한 복음 전도의 결실이 바로 잉계교회였다. 유진 벨 선교사는 “이 지역에 처음의 노력들을 쏟은 지 7년이지나고 진리가 그렇게 좋은 뿌리를 내린 것으로 여겨지는 것에 하나님께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1899년에 잉계에 방문하여 기도모임이 이뤄지고 있었던 것을 목격했다. 잉계교회의 설립연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유진 벨(Eugene Bell) 선교사와 다른 선교사들의 선교보고서를 토대로 잉계교회가 광주지역의 최초의 교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904년 스트레퍼(Fredrica E. Straeffer) 선교사의 보고서에 의하면, 잉계교회는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예배당을 자력으로 신축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오웬(Clement C. Owen) 선교사의 기록에 의하면, 잉계교회의 사경회에서 여러 사람들이 일어나서자신들의 죄를 공개적으로 죄를 고백한 일도 있었다. 그런데 선교사들의 보고서에는 광주 지역 최초의 교회를 잉계교회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우산리교회는 발견할 수 없다. 반면에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 상권은 우산리교회를 최초교회라고 하고 있고, 잉계교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오늘날 잉계지역이 바로 우산리혹은 우산동이었다는 것을 행정지도나 현지방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있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의 기록을 근거로 하고 두 개의 교회 위치가 동일 지역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잉계교회와 우산리교회는 동일한 교회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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