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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 자료유형
- 학술저널
- 저자정보
- 발행연도
- 2021.12
- 수록면
- 401 - 413 (13page)
- DOI
- https://doi.org/10.25202/JAKG.10.3.5
이용수
초록· 키워드
읍성시대에서 일제강점기까지 대구 시가지 발달의 지형적 맥락을 밝히는 본 연구의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1736년에서 1906년까지 읍성시대 대구 시가지는 신천의 분류 하천인 대구천을 중심으로 읍성 서쪽 충적평야 상에 발달하였다. 여기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경부선 건설이다. 1904년부터 대거 대구에 들어온 일본인은 읍성 북쪽과 동쪽에 거주하였다. 이들은 1907년 읍성을 파괴하여 대구의 중심부를 장악한 이후, 읍성 동쪽을 중심으로 시가지를 개발하였다. 읍성 북쪽 충적평야는 경부선으로 인한 개발이 제한되고, 자연제방이 없어 범람의 위협이 있으며, 읍성 지역과 7m 전후의 고도차가 있다. 그리고 읍성 남동쪽 충적평야는 신천 좌안 충적평야 중 폭이 가장 좁다. 이들과 달리 읍성 동쪽은 (1)자연제방이 넓고 길게 발달하여 범람의 위협이 적고, (2)투수성이 좋아 저습하지 않으며 지하수가 풍부하다. (3)읍성 지역과 고도적으로 유사하다. 이로 인해 일찍부터 이곳은 일본인들의 주요 거주지가 되었다. 이 같은 지역적 지형 차이로 일제강점기 동안 대구 시가지는 대구천을 넘어 신천 쪽인 읍성 동쪽 충적평야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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