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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허원영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인문사회과학연구 인문사회과학연구 제22권 제4호
발행연도
2021.11
수록면
37 - 68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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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해역은 오늘날과 같은 해양 질서를 형성하기까지 복잡다단한 변화를 거쳐야 했다. 그 중에서도 냉전 초기 일본이 주변국과 관계를 맺으면서 겪은 해양 분쟁은 냉전 후기의 분쟁과 그 성격이 크게 달랐다. 동중국해 해역에서는 특히 냉전 초기의 시점에서 열전의 영향이 단절보다 연속의 형태로 이어져 왔다는 점을 이해해야만 이 시기의 중일 간 해양 분쟁을 보다 폭넓게 인식할 수 있다. 본고는 이러한 차이는 어떠한 배경에서 발생했으며 냉전 초기에서 후기로 이어지는 변화는 어떠한 것이었는지 분석했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의 패전 직후부터 냉전 초기의 시기에 일본 주변 해역, 특히 동중국해에는 열전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이러한 영향은 '어선 나포'의 형태로 드러나는데, 특히 4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제2차 국공내전이 국민당 세력의 위축과 함께 점차 동중국해 연안으로 옮겨가면서 크게 심화되었다. 일본은 중국과 대만이라는 '2개의 중국'과 마주해야 하는 과제 속에서, 대만과는 '일화평화조약', 중국과는 '중일민간어업협정'을 통해 해양 분쟁을 관리하고자 했다. 둘째, 일본과 대만 사이에 발생한 두 어선 격침 사건 중 '야마다마루' 사건을 통해 냉전 초기 동중국해의 해양 분쟁에 열전과 냉전의 영향이 동시에 미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대만 해협 위기라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발생한 어선 격침 사건에 대해 대만은 충분히 책임 있는 대응을 하지 못했으며, 일본은 '자유주의 국가'의 일원으로 조속한 해결을 기대했으나 열전의 영향으로 이러한 기대가 좌절되고 만다. 셋째, 또다른 어선 격침 사건인 '제3 세이토쿠마루' 사건을 보면 냉전 초기 동중국해 해양 분쟁은 일본과 대만(또는 일본과 중국)이라는 이원적 구조로 해석할 수 없었다. 특히 오키나와를 포함한 난세이 제도는 미국의 점령이 이어지면서, 해양 분쟁이 '일본-류큐 정부-미국-대만'이라는 4원 구조 속에서 발생하였고, 따라서 관리와 해결이 결코 쉽지 않았다. 넷째, 이러한 냉전 초기의 일본과 대만(또는 중국) 간의 해양 분쟁 양상은 60년대말에 들어 해저 자원의 발견과 냉전 구조의 변화로 인해 '바다'에서 '섬'의 영유권으로 그 초점이 옮겨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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