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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영태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45호
발행연도
2012.2
수록면
291 - 316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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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은 1949년 출범 후 1960년대 후반까지 일관되게 국가로서 동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흡수통일을 희망했다. 그러나 1969년 서독 수상에 취임함 SPD(독일사회민주당) 출신 빌리 브란트(Willy Brandt)는 독일 내에 두 개의 국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간 동등한 차원에서 정부당국 간 교섭에 착수하였다.브란트는 국가와 민족을 분리해서 고찰했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에서 표방된민족개념은 독일이 두 개의 국가로 갈라져 있더라도 민족적 동질성이 유지되는 한 하나의 민족으로 존재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국가는 분리되어 있지만, 독일민족에의 소속감은 독일인의 의식을 규정짓고 있는 현존하고 생동하는 현실이라는 것이었다.이렇게 민족적 동질성이 유지되는 한 실질적으로 독일이 존재하며 정치적통일도 언젠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브란트와 SPD 정부는 그러나 오랜 분단으로 두 독일에서 독일인으로서의 소속감이 약화 내지 소멸될 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그는 당면한 민족 정책적 과제로서 정치적 통일이 아니라 국가통일까지 과도기 동안 서방과 동방의 독일인들의 민족적 소속감을 유지시키는 것으로 설정했다. 브란트와 SPD는 ‘민족이란 의식과 의지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공통의 언어, 문화, 전통과 역사가 민족을 이룰 수 있는 기초이기는하지만, 교류와 접촉을 통해 민족적 동질성을 의식적으로 유지 혹은 강화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브란트가 역점을 두려 한 것은 통일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동서독이 하나의 민족으로서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동방정책은 이런 이념적 토대위에서 진행되었다.이렇게 문화민족적 차원에서 독일 문제를 바라 본 브란트는 엄연히 존재하는 동독의 존재를 부정하고 당장 실현 불가능한 통일문제를 꺼내는 것은 동독을 서독과 더 멀어지게 만들고 민족적 이질감을 심화시켜 미래의 통일까지 어렵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국가로서 동독의 존재를 인정하고동서독간의 교류 협력 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또 독일의 통일은 유럽의 평화 속에서 가능하다는 인식하에 소련 등 동구권 공산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섰다.한편 서독에서는 기본조약을 둘러싼 의회비준과정에서 국가민족, 문화민족,의식민족(Bewußtseinsnation) 등의 세 가지 민족개념이 대두되었다. 이 중에서도 국가민족 개념을 옹호한 야당 CDU/CSU와 문화민족 개념을 옹호한SPD/FDP 연정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동독은 처음에는 1민족 2국가주의를 취하였으나 동독체제가 서독체제에 비해 열세에 빠지자 동독 및 동독공산체제 보존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이 때문에 브란트가 동독의 존재를실질적으로 인정하면서 정치적 통일을 미래의 과제로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했다. 그 결과 동독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서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며 2민족 2국가주의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브란트의 문화민족 개념은 서독 내에서는 CDU 등 야당과, 그리고 밖으로는 동독과 치열한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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