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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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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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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신라말ㆍ고려초 海上勢力은 해상교통과 해상무역이 활발하였던 서남해안지역에서 대두하였다. 이 시기의 해상세력으로는 서해안지역에서는 王建 가문, 劉相晞, 柳矜順, 柳天弓, 柳德英, 長湍韓氏 가문, 豆恩?, 朴述熙, 卜智謙, 多憐君, 羅聰禮, 崔知夢, 能昌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남해안지역에서는 朴英規, 金?, 閏雄, 王逢規, 有文, 金仁匡, 蘇忠子, 蘇律熙, 金忍訓, 朴允雄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해상세력을 장악하기 위하여 왕건과 견훤은 치열한 쟁패전을 전개하였다. 왕건은 900년대와 910년대에 아산만지역과 나주지역의 해상세력을 결집하고, 그리고 920년대에 강주지역의 해상세력을 결집함으로써 해상세력 쟁패전에서 승리하였다. 왕건은 해상세력을 장악함으로써 후삼국 쟁패전에서 승리하였다. 해상세력은 경제적 능력과 군사적 능력으로 후삼국 쟁패전의 승리에 일정하게 기여하였다. 해상무역에 의해 축적된 財富와 해안ㆍ도서지역에서 산출되는 곡식, 소금, 말을 흡수하여 마련한 경제력은 막대한 전쟁비용으로 사용되었다. 해상세력은 騎兵, 水軍 등 군인과 곡식, 소금, 軍馬 등 군수물자를 제공하였다. 왕건을 비롯한 해상세력은 골품제도의 혜택을 받지 않고 자신의 경제적ㆍ군사적 능력에 의해서 성장한 새로운 사회세력이었다. 그런 만큼 이들은 골품제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나 보다 개방적인 체질을 소유하였다. 이러한 해상세력은 신라말ㆍ고려초에 경주 중심, 진골 중심의 배타적인 신라골품제사회를 해체하고 여러 지역의 지방민과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지배체제에 참여할 수 있는 보다 개방적인 사회체제와 정치체제를 확립하는 데 일정하게 기여하였다. 이것이 신라말ㆍ고려초 사회변동에서 차지하는 해상세력의 역사적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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