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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본 연구는 화가 춘곡 고희동(1886-1965)과 그의 작품세계에 대하여 두 가지를 중심으로 연구했다. 첫째, 한국미술사에서 고희동의 의미와 기여를 알아보았다. 고희동은 한국인 최초의 서양화가로 널리 알려졌으나 본 연구에서는 혼란스러운 격동기인 20세기 초를 살았던 그가 화가로서 또한 민족주의자로서 겪었던 갈등과 그 안에서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떻게 작품 활동을 하였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일본유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화가로서 고희동은 새로운 접근법과 풍경에 대한 객관적 표현을 시도함과 동시에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민족주의자로서 한국의 민족정기와 정체성, 그리고 자부심등을 보존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였다. 그는 역사적, 문화적 혼란기에서 그가 맞닥뜨린 여러 가지 미술양식, 기법과 재료들에 대한 모순과 갈등적 요소를 해결 또는 청산하고 끊임없이 절충하고 융합하여 독특하고 새로운 미술세계를 개척해냈다.
둘째, 이 연구에서는 한국회화사에서 오랜 전통을 가진 금강산도가 일제강점기에 고희동과 그의 지식인 동료들에게 어떤 상징적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았다. 민족주의자로서 고희동은 금강산이 완전한 자연미의 덩어리 일 뿐만 아니라 한국과 한국인의 민족정신, 그리고 자부심 을 대표하는 영산이라 여기며 금강산도 연작활동을 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고희동의 현존하는 금강산도를 살펴보는 동시에 그동안 한국미술사가들에게 원작이 망실되어졌다고 알려진 1934년 고희동이 서화협회전에 출품했던 <금강오제>를 소개하였다. 1930년대 한국학생회를 통해 미국 뉴욕에 위치한 콜롬비아 대학교 한국학 연구소에 기증된 이 작품은 동아시아 도서관 소장품으로 지난 1970년대까지 도서관에 전시되어졌다. 최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보존연구실 팀에 의해서 복구된 금강산의 진주담을 그린 이 작품은 현재 한국에 남아있는 1940년과 1946년에 제작된 <진주담도>보다 더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고희동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뿐 아니라 1930년대 강점기에 민족정신과 자부심을 복구하려던 한국 미술가들과 미술세계를 이해하는데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본문·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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