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수남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백제문화 제1권 제53호
발행연도
2015.8
수록면
27 - 54 (28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은 백제가 웅진 천도 후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선택한 백제 외교망의 운영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었는지를 고고자료와 문헌사료를 토대로 하여 살펴본 것이다. 백제인 모두의 관심은 고구려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국왕과 지배층은 무너진 지배체제를 재건해고자 하였다. 여기서 그들이 우선적으로 선택한 것은 백제의 든든한 외교망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특히한성기부터 우호관계를 지속해 왔던 가야와 왜의 관계를 어떻게 운용하는가가 중요한 문제였다. 웅진기 백제와 가야와의 관계는 그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호관계였던 가야는 백제가 위기를 겪고 있는 틈을 타 이전과 달리 서진하여 백제의 영역을 일시나마 점유하였다. 이것은 금강 상류, 섬진강 이서 지역으로 확산되는 가야 유물과 『일본서기』의 일부 기록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다만그 점유 기간은 길지 않았고 무령왕대에 이르면 이 지역을 다시 수복하게 된다. 백제와 왜와의 관계는 한성기부터 오랫동안 유지 해 온 우호관계가 웅진천도 후에는 백제의 적극적인외교망 구축으로 인해 보다 긴밀하게 전개되었다. 한성기에 비해 웅진기 유적에서 출토되는 왜계 유물의 양이 훨씬 많으며 이 시기 왕도 주변과 영산강 유역에서 보이고 있는 고고학 자료 특히 왜계 고분의존재가 그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아울러 왜계 묘제가 영산강 유역에 축조되고 백제 통제 하에 있던 왜인들 가운데 일부를 영산강 유역에 대한 지배에 동원하였을 것이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고 왜인들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또한 짐작해 볼 수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8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