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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재목 (영남대학교)
저널정보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유학연구 제36권
발행연도
2016.8
수록면
1 - 3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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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고려말 귀국을 포기하고 명나라로 망명한 유학자로 말해지는 농암(籠巖) 김주(金澍. 1355-1392)에 대한 ‘기억’ 형성을 인문적으로 성찰해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농암은 <고려 공양왕 때 하절사로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압록강에 이르러 망국의 소식을 듣고 통곡하면서 부인 유씨에게 서신을 보내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으니 내가 강을 건너면 몸 둘 곳이 없노라. 서신 보낸 날을 나의 기일로 하라.”고 전한 후 고국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이렇게 보면 농암은 망명 지식인으로서 분명 디아스포라에 해당한다. 디아스포라라는 주제는 정치사의 영역에서 독점할 것이 아니라 ‘사상사(思想史)’ 등 문화 전반에 걸쳐 논의할 수 있다. 농암의 유학사상을 조명하려면 기본적으로 이를 밝혀낼 1차자료가 존재하여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농암이 남긴 자료는 몇 점 되지 않는다. 그 마저도 ‘구전(口傳) 내용을 후세에 기록한 것’이다. 그러니 농암이 직접 쓴 자료보다 구전내용이 그를 평가하는 핵심자료가 되고 있다. 더욱이 농암이 추앙되는 과정에서 산출된 자료의 대부분은 이 ‘구전 내용’에 근거하여 ‘재생산’된 자료들이라 팩트 면에서는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하겠다. 이제 농암의 연구는 보다 객관적으로 진행하여 신비화된 요소를 제거하고 사실에 근거하여 그를 있는 그대로 복원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따라서 이 논문은 종래의 농암 관련 연구를 참고하면서도 특히 농암 김주의 ‘기억’ 형성에 주목하여 이 대목이 갖는 인문적 의미를 성찰해보고자 하였다. 그래서 구전되는 초기 내용으로 논의의 시점을 돌려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농암에 대한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며 그 불완전한 대목이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를 논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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