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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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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사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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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원 아시아여성연구 아시아여성연구 2023년 제62권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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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이 글은 일제하 항공 분야에서 조선인 여성의 존재를 살펴보았다. 1910년대 일제는 군(軍)을 중심으로 항공 분야를 도입하였고, 여기서 입대가 제한된 여성과 식민지인은 참여할 수 없었다. 1920년대에 들어서 민간항공이 본격적으로 개시되자 그동안 배제되었던 계층에서도 비행사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다만 식민지 여성은 항공 기술의 습득에 요구되는 도일(渡日) 유학의 부담을 더 크게 받았기 때문에 조선인 여성 비행사의 등장은 다소 늦었다. 1920년대 후반 박경원과 이정희가 비행사 자격을 획득했을 때, 민간항공은 교통의 한 분야로 도약하고 있었다. 일제는 항공교통에서 여성 비행사들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제한했다. 항공교통은 ‘에어걸’이란 객실승무원을 도입하면서 항공에서 성역할의 분화를 촉발했다. 일본 회사 위주의 항공교통에서 조선인 여성은 객실승무원의 기회에서도 불리했다. 조선인 여성들은 비행사로서의 활로를 찾고자했고, 그 일환으로 통치권력의 선전을 위한 비행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전시체제하 민간항공이 군사항공으로 전환되면서 여성 비행사의 활로는 완전 차단되었다. 전시 항공에서 여성은 미래의 항공군을 키우는 어머니와 같은 전통적인 성역할의 방식으로 참여를 요구받았다. 일제하 항공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은 갈수록 한정되는 경향을 띠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의 열망을 최대한 실현하려는 조선인 여성들은 여전히 등장했다. 이러한 노력은 해방 후 ‘항공 건설’에서 여성의 적극적 가담이 나오는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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