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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임오군란 직후 수신사 겸 전권대신으로 일본에 간 박영효와 비공식적으로 수신사행에 동행한 김옥균과 민영익의 대청 인식을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구체적으로 이 글에서는 그들이 대청 인식을 표출했던 주일 영국공사 파크스(H. S. Parkes)와의 대화 내용을 주요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이를 통해서 임오군란 직후 청국의 간섭이 강화되는 현실에서 조선과 영국이 상호 관계를 정립했던 과정을 규명하였다. 임오군란이 발발하자 파크스는 영국 해군의 플라잉 피쉬호를 조선으로 파견했다. 군란으로 정권을 장악한 흥선대원군의 대외정책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흥선대원군은 영국 측에 군란 직전에 조선정부가 미국, 영국, 독일과 체결한 조약을 준수하겠다는 뜻을 전달하였다. 하지만 청국은 군대를 파병해서 흥선대원군을 톈진으로 압송하고 임오군란을 진압한 후, 조선에 대한 간섭을 강화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박영효, 김옥균, 민영익은 일본에서 파크스에게 그들의 반청 의지를 표명하였다. 그런데 민영익은 반청을 통해서 청국의 간섭이 없었던 의례적 성격의 조청 속방관계의 복원을 지향한 반면에, 박영효와 김옥균은 서구의 국제법에 입각해서 반청자주를 추구하였다. 결론적으로 민영익은 청국의 간섭을 극복하고 고종의 통치권을 온존하기 위한 방안으로 의례적인 조청 속방관계와 대서구 문호개방의 병존을 추진했던 반면에, 박영효와 김옥균은 의례적인 조청 속방관계를 부정하고 만국공법에 입각한 대등한 국가관계를 모색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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