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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李容胤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미술사연구회 미술사연구 미술사연구 제44호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101 - 126 (26page)
DOI
10.52799/JAH.2023.06.4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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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1766년과 1768년에 조성된 봉정사 영산암 고승진영을 중심으로 佛事의 주체를 밝히고, 제작 시기에 숨겨진 불사의 변화, 두 번의 불사에서 화승이 표현하고자 했던 진영의 조형성, 18세기 후반 봉정사 진영 조성과 봉안의 의미 등을 고찰하였다. 1766년 월암지한은 화승 유성에게 의뢰해 봉정사 영산암에 봉안할 <환성지안진영>, <포월초민진영>, <영월응진진영>, <설봉사욱진영>을 조성하고 1768년에 추가로 <서산휴정진영>, <사명유정진영>을 제작하였다. 이에 유성은 불사 의도를 반영해 불교계에 알려진 인물이나 과거의 인물은 정형화되고 이상화된 모습으로 그리고 불사 주체가 기억하는 인물은 사실성을 살려 표현하였다. 1766년 이후 1768년에 추가로 진영이 제작되었던 이유는 1768년에 영산암 영당을 건립하여 3祖3師 진영을 봉안하려는 의도가 맞물려 있다. 불사의 변화로 1766년 진영과 1768년 진영 사이에는 자세와 시선 등에서 부조화가 생겼지만 3祖3師 진영을 영당에 봉안함으로써 봉정사의 포월문중은 서산계이자 환성지안의 정맥을 계승한 문중으로써 그 정통성과 위상을 드러나게 되었다. 이처럼 조선 후기 고승진영에는 사찰에 세거한 승려문중이 해당 사찰의 역사를 자기화하고 문중의 정통성을 정립하고 상징화해 나가는 움직임과 변화, 불교계의 시대 인식 등이 반영되어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18세기 후반 鳳停寺 靈山庵 佛事와 月庵旨閒
Ⅲ. 有誠의 고승진영 조성과 喚惺門中의 조력
Ⅳ. 봉정사 고승진영으로 본 조성 · 봉안 변화 양상과 의미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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