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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중세 시대 성찬에 관한 화체설 교리는 중세 초기의 수도원 내에서의 논쟁으로 출발하여, 서방 교회 전체를 아우르는 대규모 논쟁으로 발전하였다가, 점차 신학적으로 체계화되고, 교리적으로 확정되는 과정을 보였다. 라트베르투스와 라트람누스의 최초의 논쟁은 수도원이라는 배경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따라서 그 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러나 11세기에 전개된 베렝가리우스와 란프랑의 성찬 논쟁은 서방교회의 전체가 연관되었고, 이 논쟁에서 교회는 세속권력으로부터의 영적 권위의 독립과 성직자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한 유용성을 발견하였다.
12세기부터 중세의 교회는 스콜라 신학을 통해 화체설에 관한 교리를 체계화하고 교리화하는 과정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스콜라 신학은 성례에서 물리적 요소의 필연성을 주장하였다. 또한 동시에 전개된 대규모 이단인 카타리파와 발도파의 성직자의 권한에 대한 침해를 대항할 필요성이 생겼다. 이러한 요소들은 제4차 라테란 공의회를 통해 ‘화체설의 교리화’를 낳았다. 중세 후반 피렌체 공의회는 스콜라신학의 도움으로 모든 성례는 세 가지 구성 요소–질료, 형상, 집례자–가 필수적임을 확언하였다. 그리고 중세에서 발전하는 화체설 교리는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종합되었다. 이 공의회는 성찬에 그리스도의 임재를 “참으로, 실재로 그리고 실체적”(vere, realiter ac substantialiter)이라고 확언하며 물리적 실재를 분명히 하는 화체설 교리를 정당화하였다.
그러나 화체설의 물질에 대한 강조는 중세 후반 대중적 경건운동과 연계되어 과도한 초자연주의와 미신적 경건에 더 쉽게 어울렸고, 성찬을 성직자의 권위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 ‘화체설 교리’는 종교개혁가 루터의 비판처럼, ‘성경과 이성에 뒷받침’된 것이라기보다는, ‘경험적 근거’와 ‘교회의 필요성’–성직자의 권한 강화–에서 발전된 주장이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따라서 ‘성경과 이성의 근거’에 의해 화체설 교리는 수정되거나 반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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