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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670년대는 신라와 당의 관계가 변화한 시기로서 중요하다. 7세기 중반 동맹을 맺은 이래로 신라와 당은 660년에 백제를, 668년에는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켰다. 그런데 고구려의 멸망 이후 신라와 당은 대립하게 되어 군사적으로 충돌하였다. 이것이 나당전쟁(670~676)이다.
나당전쟁 기간 동안 신라와 당은 기본적으로 대립적인 관계에 있었지만,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소통’은 계속되었다. 671년 당에서 파견된 薛仁貴는 文武王에게 서장을 보냈고, 이에 대해 문무왕 역시 설인귀에게 답신을 보냈다. 또한 672년 신라는 당황제에게 사죄의 내용을 담은 表文을 바치기도 했다. 그리고 675년 전쟁 종결기에도 신라가 당에 외교사절을 파견한 사실이 중국자료 및 三國史記 에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670년대의 양국은 군사적 충돌이라는 극단적 상황 속에서도 외교교섭, 즉 소통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러한 소통은 신라의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여겨지는데, 기왕의 나당전쟁 연구에서는 이 문제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초기에 진행된 나당전쟁 연구는 주로 三國史記 의 신빙성 문제를 논의하였다. 이후 나당전쟁은 군사사의 관점에서 연구되기도 했고, 금석문의 내용을 활용하여 검토되기도 했다. 이외에 나당전쟁의 전개과정을 동아시아 정세와 관련하여 설명한 연구도 있는데, 이들 연구에서는 당이 신라원정을 계속할 수 없었던 배경으로 西域 吐蕃 정세의 변화를 지적하였다.
이러한 선행 연구는 나당전쟁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게 하였다는 점에서 연구사적 의의가 있다. 다만 신라와 당 사이에 이루어진 소통의 구체적인 양상과 그것의 성격 분석에 해명되지 않은 부분이 존재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본 논문에서는 신라와 당의 구체적 교섭 사례이자 양국의 정치적 의도가 내재된 자료로서 설인귀서장과 문무왕답서를 검토하고자 한다. 그동안 이들 서장을 언급한 연구는 많았지만, 두 자료를 총합적으로 분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우선 당과 신라가 어떠한 점에서 대립하고 있었는지를 밝히겠다. 이어서는 三國史記 에 수록된 설인귀서장과 문무왕답서를 분석함으로써 양국 사이에 어떠한 문제가 쟁점화되었는지, 그리고 어떠한 문제를 쟁점화하지 않도록 노력했는지를 파악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는 670년대 후반 신라가 당과의 대립을 어떠한 방식으로 해소하려 했는지 살펴보겠다. 670년대 나당관계의 전개는 단지 서역 정세의 변화로만 설명될 수 없다. 외교 관계 개선을 위한 신라의 숙련된 소통 전략을 재평가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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