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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27집
발행연도
수록면
183 - 224 (42page)
DOI
10.52271/PKHS.2023.12.127.183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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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본 연구는 제1공화국 전반기인 1948년에서 1953년까지 이승만이 양원제를 도입하려 한 과정, 양원제를 둘러싼 이승만과 국회의 대립 양상을 조명했다. 양원제는 대통령중심제와 함께 이승만이 제헌헌법 논의 당시부터 도입하고자 한 제도였다. 제헌헌법 제정 당시에는 좌절되었던 이승만의 양원제 도입 시도는 정부수립 이후 국회와의 갈등 과정에서 재개되었다. 이승만은 양원제 도입을 통해 야당 세력을 견제하고 내각책임제 개헌 시도를 차단한다는 목표를 세웠으며, 1952년 5월 상원의 1/3을 관선의원으로 구성하는 구체적인 양원제 구상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승만의 구상은 자신을 지지하는 의원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했으며, ‘발췌개헌’ 논의 과정에서 양원제는 채택되었으나 관선 규정은 삭제되었다. 관선 양원제 도입에 실패한 이승만은 이를 만회하는 차선책으로 각종 제한 장치를 포함한 선거법 제정을 추진했으나, 이 또한 여야를 모두 포함한 원내 정치세력과의 충돌 과정에서 좌절되었다. 이승만은 양원제 도입 시도가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자, 1954년 이후 권력 강화의 대안으로 또다른 개헌을 선택했다. ‘사사오입’ 개헌 이후 이승만은 다시는 이전처럼 양원제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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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국문초록
  2. Ⅰ. 머리말
  3. Ⅱ. 이승만의 양원제 도입론 제기
  4. Ⅲ. 양원제 채택과 이승만 구상의 굴절
  5. IV. 맺음말
  6. 참고문헌
  7. Abstract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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