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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강원대학교)
저널정보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인문과학연구 제79집
발행연도
수록면
195 - 226 (32page)
DOI
10.33252/sih.2023.12.79.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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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철원 지역에 남아 있는 여러 성곽 유적은 다양한 성격을 가진다. 이러한 성곽 유적에 대한 부분적인 조사나 연구가 있으나 여전히 명확한 성격은 파악되지 않았고, 논란의 여지도 있다. 특히 철원 한탄 강변에 남아 있는 여러 성곽유적은 세밀한 조사가 이루어진 바 없고, 일부 연구가 있기는 하나 아직 그 역사적 성격이 명확한 것은 거의 없다.
본고에서는 철원 한탄 강변에 소재하는 할미산성, 내대리성, 고석성, 성모루토성, 토성리토성 등 5개 성지를 대상으로 그 역사적 성격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할미산성과 내대리성은 기왕의 조사와 연구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모두 6세기 중반경 신라의 한강 이북 지역 점령과 임진강-한탄강 라인의 전선(戰線)을 관리할 당시 만들어진 신라 최전선의 성곽이며, 고석성은 수습 유물이 거의 없어 연대 추정조차 어렵지만 입지나 축성 형태, 잔존하고 있는 현상 등을 볼 때, 나당전쟁 시기나 고려말 왜구에 대비한 주민 농성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모루 토성은 대체로 호로고루나 당포성, 은대리성 등 임진강-한탄강 북안 지대에 축조된 고구려의 성곽 유적과 같은 성격의 유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성모루 토성은 연천의 은대리성과 그 축조 방식이 유사하다. 토성리 토성은 운영 시기를 판단할 만한 고고학적 자료가 없기에 필자도 초축 시기에 대한 명확한 설정은 어렵다. 이곳에서 수습된 유물이 다양한 시기의 것이기 때문에 유물에 의한 판단도 어렵다. 평택의 농성(農城), 청주 정북동토성과 유사한 점이 있으나 그 성격에 대해서는 논란이 여전하다. 필자는 고려시대 이후 왜구와 같은 소규모 침입에 대비해 주민 입보용으로 축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여기나 정확한 성곽 축조연대 판단은 아직 근거할 만한 고고학적 자료가 없다. 다만 이와 같은 평지의 방형토성이 우리나라 성곽 유적 중에서는 매우 드문 사례이므로 그 성격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정밀한 학술조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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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국문초록
  2. 1. 머리말
  3. 2. 철원 한탄강변 성곽유적 현황
  4. 3. 유적의 성격 검토
  5. 4. 맺음말
  6. 참고문헌
  7. Abstract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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