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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현재 냉전 연구는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정보공개법에 의해 최근 공개된 미국 공공기관과 민간단체의 문서 열람이 가능해지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한국 냉전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다. 이 논문은 스탠포드 대학교 후버연구소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는 아시아재단 유치진 서류를 중심으로 전후 연극계에 대한 냉전사적 고찰을 목적으로 한다. 후버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는 유치진 관련 파일은 1954~962년에 생성된 유치진 개인 문서, 유치진이 대표로 있었던 신협 지원과 관련해 1955~959년에 생성된 문서이다. 같은 시기 젊은 연극인들의 소극장 운동의 핵심 역할을 했던 제작극회의 1958년 공연제작 지원 문서도 함께 참고하였다. 이 시기 아시아재단의 유치진?신협 지원작은 <나도 인간이 되련다>, <한강은 흐른다>이다. 또한 아시아재단은 한국의 대표적 극작가 유치진을 매개로 한 중고등?대학 연극경연대회를 지원했다. 그런데 1957년 전국대학연극경연대회 지정작 유치진의 <왜 싸워>가 친일극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문총의 반발과 문교부 검열에 의해 대회가 무산되었다. 아시아재단은 당시 <왜 싸워> 사건 관련 보고서를 기밀문서로 지정하면서 한국 문화계의 동향을 신중하게 파악하고 있다.
유치진과 관련하여 아시아재단 지원의 또 하나의 특징은 록펠러재단과 연계된 사업이다. 대표적으로 드라마센터 건립 지원이 그 예이다. 유치진은 록펠러재단의 지원을 받아 1956년 미국 연극계를 시찰하는 한편 록펠러재단?한미재단?아시아재단의 지원을 받아 신협의 이름으로 실험 소극장을 목적으로 한 드라마센터를 건립하였다. 유치진은 별도로 비영리 단체 한국연극아카데미를 설립하여 록펠러재단 지원을 받았다. 한국연극아카데미는 현재 서울예술대학의 전신이며, 드라마센터는 서울예술대학의 실습장으로 쓰이다가 현재 서울시 서울문화재단의 제작극장으로 임대 중이다. 드라마센터 건립 시기는 젊은 연극인들에 의해 소극장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때로 애초에 ‘실험 소극장’으로 설계되었던 드라마센터에 대한 연극계의 전폭적인 환영의 분위기 속에서 건립되었으나 건립 1년 만에 운영난으로 막을 내리고 서울예술대학의 전유물이 되면서 소극장 건립에 대한 연극계의 오랜 염원 또한 무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근 한국연극의 공공극장 논란과 관련하여 드라마센터의 공공성과 함께 냉전 시대의 산물로서 드라마센터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연구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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