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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계승범 (서강대학교)
저널정보
만주학회 만주연구 만주연구 제11호
발행연도
2011.6
수록면
179 - 208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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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전쟁(왜란)이 발발하기 전에 이미 建州女眞을 통합하여 만주 일대에서 독자적 세력을 굳힌 누르하치는 전쟁이 끝나자 본격적인 정복사업을 전개하여 만주 전역을 평정하고,1616년 정초에 마침내 후금을 건국함으로써소위 ‘명질서’에서 완전히 이탈했다.뿐만 아니라,1618년의 요동 침공을 시작으로 중원 정복의 첫걸음을 디뎠다.이에,조선의 코앞에서 벌어진 명과후금의 무력 충돌은 4반세기 넘게 지속되었고,지정학적으로 명과 후금 사이에 놓인 조선은 외교 문제로 고심하였다.그런데 이렇게 중차대한 시점에서 조선의 대후금 외교를 사실상 전담한 핵심 인물은 조정의 고위 관리가아니라 灣浦출신의 하층민으로 鄕通事란 직책을 맡고 있던 河世國(1575~1622)이라는 자였다.그는 거의 25년 동안 만포에서 이루어진 거의 모든교섭의 한복판에 있었으며,특별한 외교 임무를 띠고 누루하치를 여러 차례직접 방문하기도 했다.이렇듯 조선을 대표해 누르하치와의 외교 실무를 전담하다시피 한 하세국은 1622년에 후금에 머물던 중 후금 지도부에 의해그만 처형됨으로써,이국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이 논문에서는 향통사 하세국을 중심인물로 삼아 미시사的접근을 시도하되,그를 통해 17세기전반 동아시아 질서의 격변 과정에서 조선이 처해 있던 위상과 조선의 선택이 갖는 ‘東亞史’的의미를 거시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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