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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저널정보
만주학회 만주연구 만주연구 제24호
발행연도
2017.12
수록면
89 - 131 (4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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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기존 연구성과와 일부 새로운 자료를 활용하여 구국계몽운동 단체인 신민회(新民會)의 만주 독립군기지 건설 및 인재양성 방략과 신흥무관학교와의 관계, 그에 따른 경북 안동 지역 출신 지도자들의 신흥무관학교를 중심으로 한 단체들의 활동을 검토, 분석코자 하였다. 이를 통해 기존 학계에서 이시영?이회영 등 경주 이씨 가문과 기호(畿湖)지역 관련인물의 기여와 활동 내용은 비교적 널리 연구한 반면, 경북(안동)출신 인사들의 관련 활동은 상대적으로 조명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나름대로 극복해보고자 하였다. 검토 결과 그동안 학계와 국민 일반이 잘 몰랐던 『독립신문』 기사를 통해 신민회를 주도했던 안창호(安昌浩)의 인재양성 전략 방침과 안동혁신 유림의 경험 등이 활용되어 신흥무관학교가 설립, 운영된 사실을 새롭게 확인하였다. 그리고 양기탁(梁起鐸)이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1916년 경 이 학교와 주변지역 한인 독립운동 세력의 희망찬 모습과 독립군기지 건설, 독립전쟁의 구체적 실천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 번역 발간된 김대락?이상룡의 일기와 유고(遺稿)를 통해 1910년대 남만주 서간도(西間島) 지역으로 이주하여 신흥무관학교와 관련 단체를 이끌며 고군부투하던 안동출신 혁신유림 계열 인사들의 주도적 활동모습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1910년대 한인 이주사와 한중관계의 한 단면을 새롭게 정리할 수 있었다. 또한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인 김학규(金學奎)와 교관 김경천(金擎天),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영도하였던 김구(金九) 주석의 이 학교에 대한 인식을 검토한 결과 이 학교가 1919년 전성기 때에는 4곳에 본교와 분교를 두어 2,000여명의 학생이 있었으며, ‘독립전쟁’에 적극 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제 신흥무관학교를 중국동북지역, 즉 만주 지역사 연구 차원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국?일본?한국과 러시아, 미국?영국 등 열강과 국제관계의 교차점으로서의 중국 동북지역-남만주-서간도라는 복합적, 학제적 관점에서의 심층적 연구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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